생각지도 않게 마주하게 된 테스트기 두 줄.
약 6개월을 기다리다 이제 마음을 좀 내려놓으려던 찰나에 확인하게 된 두 줄에 많은 감정이 몰려왔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임신을 계획한 후 첫 달, 날짜만 맞추면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하던 때였으니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모든 행동에 괜히 조심성이 더해졌다. 뱃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움직임이나 느낌에 열심히 세포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마냥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 임신을 계획하지 않은 경우엔 예정일이 지나고서야 몸의 변화를 통해 '임신인가?' 알게 된다지만 계획 임신을 준비하는 경우는 결과가 궁금해 예정일만을 기다리게 되더라. 숙제 후 예정일을 기다리는 2주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대망의 그 날, 눈 뜨자마자 어서 확인해보고 오라며 남편이 톡톡 재촉했다. 나도 내심 궁금했으면서 괜히 유난 떨고 싶지 않아 못 이기는 척 화장실로 향했다. 테스트기를 사용 후 뒷정리를 하며 슬쩍 쳐다보니 진한 줄 옆으로 아주 희미한 한 줄이 더 보이는 게 아닌가! 화장실 밖을 나가기 전에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봐도 얕게 보이는 한 줄은 분명했다. 멋쩍은 표정으로 "이게 뭐지...?" 하며 남편에게 보여주니 남편은 "임신이네!" 라며 잠을 확 깨웠다.
출근하기 전까지 침대에서 그렇게 한참을 임신테스트기만 들여다본 것 같다. 신혼 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2세를 '막가'라고 불러가며 장난쳤는데(장난 삼아 남편이 아기를 막가파로 키우겠다며 막가라는 예비 태명을 만들어놨었다.) 정말 그 '막가'씨가 나타났다. 우리는 희미한 테스트기를 보며 며칠 전에 꾸었던 내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무리를 이끌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나무와 뱀이 가득한 곳이었다. 바닥은 나무뿌리인지 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엉켜있었고, 한 사람이 나에게 '보라색 뱀'한테만 안 물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난 '보라색 뱀'이 어디에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던 차에 갑자기 나타난 얇은 보라 뱀이 내 엉덩이를 꽉 깨물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남편 모두 도와주기는커녕 보라 뱀에게 물려있는 나를 다들 바라만 보고 있었고, 나는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뱀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다 잠에서 깨어났다.
뱀이 어떤 의미인지, 보라색이면 딸을 나타내는 건지, 왜 큰 구렁이 같은 뱀이 아니고 얇은 뱀이었을지 상상해봤다. 갑자기 내 아랫배가 소중해진 느낌이고 그 날 우리의 아침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 타고 출근하면서 임산부석을 보고 '이제 저 자리에 앉아도 되는구나' 생각도 해보고, 일하는 동안 또는 퇴근길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이렇게 조심스러워질 수가 있나 싶었다. 남편은 무리하지 말고 틈틈이 쉬면서 일하라며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세포일 텐데 그거 하나 있다고 되게 조심하게 되네' 하며 맞받아쳤다.
고마운 내 남편, 내 꿈을 듣고 보라색 튤립을 보라색 포장지에 보라색 리본 끈으로 주문해 들고 들어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임신 확인 후 받아보는 꽃다발이라니! 머쓱하게 건네는 남편 표정에 눈물로 대답했다. 이런 게 행복이란거구나.
정확하게 임신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며칠 동안 테스트기를 사용하며 두 줄이 점점 진해지는 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기에 우리는 그다음 날부터 매일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아직은 전 날과 비슷한 두 줄이다. 두 개의 테스트기를 한참 비교해보며 그렇게 또 출근을 했다. 이틀 연속이나 흐린 두 줄을 보니 계속 계속 확인해보고 싶고, 얼른 진해진 두 줄을 보고 싶어 먼저 퇴근하고 돌아온 나는 오후에 한 번 더 테스트기를 사용했다.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일인지, 희미하던 한 줄은 아예 보이지 않고 선명한 한 줄만이 남아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