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걸음걸이, 내 소리, 내 감정까지
모든 것에 너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 배가 나온지도 모르겠는 초산모의 18주.
두꺼운 패딩으로 감싸두었으면서도 왜 그렇게 배에 손을 올려놓고 다녔는지.
혼자 챙겨먹을 점심거리를 사기 위해 동네 마트를 방문했다.
오늘은 어떤 음식이 당길까, 어떤 음식으로 끼니를 챙겨야 하나 둘러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쿵!' 소리가 난다. 제품 진열 정리를 하던 직원분이 무거운 박스를 옮기다 힘 조절을 실패해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으신거다. 동네마트를 삼킬 듯한 큰 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니 깜짝 놀란건 당연할 터인데 아주 반사적으로 내 손이 배에 얹어진다.
"에구, 괜찮아? 놀랬지." 토닥토닥
순간적으로 아기가 걱정되면서 한 편으로는 '나 진짜 뭐야, 왜이렇게 오바야(ㅋㅋ)' 싶은 생각이 든다.
배를 쓰다듬으며 놀라하니 직원분께서도 "어머, 아기 놀랐겠다. 미안해요." 하시길래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제 슬슬 살이 붙기 시작한다.
임신했으니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임신 전부터 다닌 헬스장을 가도 뭘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너무 의식하느라 하지 못한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헬스장 이용권은 남편에게 넘기고, 집에서 실내자전거나 타기로 했다. 한 20분 탔을까. 시간이 조금 지나 저녁이 되자 무릎이 콕콕 쑤시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너무 많이 걸어 무릎이 욱신거리던 날처럼.
위기감을 느끼고, 며칠 휴식을 취한 뒤 병원 방문일에 의사선생님께 여쭤보니, 자전거는 자궁에 자극이 될 수 있으니 타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뭐 하나 속 편하게 할 수 있는게 없구만. 나는 그냥 임신을 해서 뱃 속에 아기가 있는 것 뿐인데 멀쩡하던 내 무릎은 왜 이렇게 약해진건지 참 의아하고 야속하다.
눈 오는 날을 참 좋아한다.
뽀득 뽀득. 쌓인 눈을 무게 실어 꾸욱- 밟으면 나는 소리가 참 좋고,
하얀 솜뭉치가 펑펑 내려오는 모습도, 온통 하얀 세상이 환하고 깨끗해보여서 좋았다.
뱃 속 아기와 함께 외출하기 전까지는.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은 눈 구경이 너무 하고싶었는데 차마 혼자 나가기가 무서웠다. 춥기도 너무 추웠지만 공동현관을 나가자마자 오르막 내리막길을 걸어야 하는데 자칫 미끄러질까 걱정이 됐다. 퇴근하고 온 남편 손을 따라 함께 동네 한 바퀴 걸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울라프(겨울왕국에 나온 귀여운 눈사람)도 만날 수 있었고, 언 길에서 스케이트 타는 남편도 볼 수 있었다. 좁은 인도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중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아주머니를 비켜드리려고 총총 거리다 내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헉, 아기 어떡하지.'
한창 꾸며진 내 모습으로 살아갈 땐 넘어진 순간 부끄러움이 가장 어려웠는데, 그런거 하나 없고 아기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생각하면 별 일이 아니겠지만, 모든 순간이 처음인 나에게는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 순간 배가 팍- 당겨지는 느낌에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걸었다.
바닥에 떨어진 왼쪽 엉치뼈가 죙일 아팠으니 아기에게도 그 충격이 전해졌겠지. 집에 돌아와 빙판길에 넘어진 임산부들 이야기를 찾아보고 찾아봤다. 하루에 한 명씩은 꼭 있었다. 그리고 온 신경을 태동에 집중했다.
'고마워. 움직여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