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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솔 Oct 05. 2024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안타까워한다. '신용불량'이라는 단어에서 긍정적인 무언가를 떠올려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4000만 원의 빚을 갚아나갈 능력이 내게 없음을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거였다. 올 것이 왔구나. '왜'라는 말보다는 '드디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언젠간 일어나고야 말았을 일이 지금 일어났다는 느낌.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였다. 내가 버는 것 이상으로 미친 듯이 소비하는 패턴은 이미 고착화한 지 오래였고, 스스로는 나를 멈출 능력이 없었다. 누군가 나를 멈춰줘야만 했다.


카드사에서 나를 멈춰주었다. 채권추심이라는 이름으로. 며칠간 전화와 문자가 마구 오더니 카드가 정지되었고, 그제야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모든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내 명의의 금융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택시를 타기도,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주문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택시, 배달음식, 쇼핑은 내 통장 잔고를 박살낸 3대 원인이었다. 사는 게 조금 불편해지긴 했지만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인간은 좀 불편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침 열한 시쯤이면 어김없이 추심 전화가 왔다. 몇 달간 백수로 지내면서 밤낮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는데, 추심 전화를 모닝콜 삼아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자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방문 추심이었다. 찾아보니 채권추심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선이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칼같이 일어나 오후 9시까지 카페에 머무르면서 글을 쓰거나 공부를 했다.


채권추심 덕분에 내 삶이 건강해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지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현명하게 소비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신용불량자가 되어보는 경험, 모든 금융 거래가 막혀보는 경험, 일명 '망해보는 경험'이 나에게는 꼭 필요했다. 세상에는 정말 쫄딱 망해봐야만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사실 내가 정말로 '망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의 시간을 잘못된 습관을 교정하고 나 자신을 재정비하기 위한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건 내가 지닌 최고의 재능이고 나는 이번에도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볼 생각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 삶이란 끊임없이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열어볼 수 있는 문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어떤 문은 내가 열지 않더라도 저절로 열린다.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하나의 문이 닫혔지만,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새롭게 열린 문의 이름은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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