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이해력과 금융 교육, 중요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가 닿지 않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자 가장 큰 흥미거리는 바로 '돈'이라고 생각한다. 돈에 관한 화제는 손쉽게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서점에만 가 보더라도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지에 관한 책들이 즐비하다. 부(富)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는 넘치도록 많다.
그러나 정작 돈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매일 돈에 대해 생각하고 돈과 관련된 말들을 입에 담으면서도 우리는 돈을 잘 모른다. 특히 이 세대의 청년들 중 돈을 어떻게 쓰고 관리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교육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돈에 관한 지식을 공교육이 아닌 '가정 교육'을 통해 습득한다.
즉, 현재 개인의 경제적 역량은 '주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보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가 어릴 때부터 통장을 만들어주고 저축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돈을 모으는 습관을 들이게 될 확률이 높다. 반면 부모로부터 돈에 관한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그러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어떤 청년들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차이, 신용카드와 대출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 은행 금리와 적금과 예금에 관한 지식들을 어느 정도 보유한 채로 경제 생활을 시작하지만 어떤 청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사회에 내던져진다. 출발선부터가 너무 달라져버리는 것이다.
가정 환경이나 교육 환경 등 개인의 배경에 따른 경제적 지식에 관한 격차는 한 사람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차곡차곡 누적된다. 각자의 출발선이 다르므로 이 격차는 돈을 벌고, 쓰고, 모으는 동안 점점 더 벌어진다.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나는 돈에 관한 '가정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일명 '망해보면서' 금융 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자본주의에는 일견 잔인한 면이 있다. 자산이 많고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위험성이 낮은 대출을 이용하여 더 많은 돈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자산이 적고 수입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대출을 받을 때 더 높은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정작 저금리 대출이 필요한 건 후자의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일전에 어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조사를 해보니 사람들이 사채로 처음 빌리는 금액은 평균적으로 기십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는 글이었다. 왜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채를 쓰게 되는가. 목돈이 없어서 고액의 대출을 이용하게 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당장 월세 등으로 지출해야 할 30만 원이 없어서 돈을 빌린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2금융권 대출을 알아보다가 결국 사채에까지 손을 대고 마는 것이다.
신용 등급이 낮아 신용카드를 만들지 못하고, 1금융권에서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노리는 것은 고금리의 약탈적 대출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은행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이들에게 대부업체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금리 대출을 받아 어마어마한 이자를 갚아나가다 보면 이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돈을 모으기도 더 힘들어진다. 최소한의 저축조차 마련해내지 못한 이런 사람들은 병이나 실직 등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쉽다.
앞선 글에서 나는 힘든 시기에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돈을 빌려주었던 어떤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별다른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곤 했는데, 그건 그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다. 세상에는 10만 원이 없어서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장의 방세, 당장의 공과금, 당장의 카드값을 막아줄 몇십만 원의 돈이 주어진다면, 그래서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만 있다면 이후의 삶이 훨씬 나아질 수 있으리란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빌린 돈도 10만 원 정도의 적은 액수였다고 기억한다. 그 10만 원이 없었다면 나는 약탈적 대출에 손을 댔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죽음을 택했을 수도 있다. 시사인 845호 기사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는 금융역량강화센터(Financial Empowerment Center)라는 것이 있다. 그곳의 한 금융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empathy)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압도'당한다. 압도당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 자책에 빠져들게 되므로, 일단은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말고, 공감을 통해 자책의 늪에서 그들을 건져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담자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코치들은 그 상황을 헤쳐나갈 계획을 함께 세워준다. 성인 대 성인의 관계이기에 코치들이 내담자에게 어떤 행동을 강제할 방법은 없지만,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담자가 자신의 계획 이행 여부를 보고하도록 하기만 해도 큰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나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변화한다. 나에게 돈을 빌려주고 고민 상담을 해주었던 사람의 존재 때문에 내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듯이.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내가 누린 것과 같은 행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 문제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상 범주 이상으로 돈을 마구 써버리는 사람의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온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이미 돈을 헤프게 쓰는 습관이 있었다거나, 돈을 막 쓰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거나 등등. 돈 문제는 단지 그 사람이 어리석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금융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의 부재가 금융 지식의 부재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약탈적 대출에 손대거나 필요 이상의 빚을 지게 되는 등 여러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다.
돈 문제를 겪는 개인을 어리석은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하고, 그 사람의 문제를 '그 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문제'로 축소시킨다면 우리 사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뿐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가정 교육'이 아닌 공교육을 통해 금융 지식을 제대로 습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 아니라 학교의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부모를 '잘 만난' 사람들만 좋은 출발선에 서게 되는 건 너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위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된 부분이 많습니다. 좋은 글이니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