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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Nov 07. 2023

딸이 강아지를 데리고 갔습니다

조용해진 집이 허전할까요?

오늘 아침에 눈 뜨자마자 딸에게 톡을 했다.

“이제 달이 데리고 가 “

“응, 엄마 달이가 괴롭혀? “

“그건 아니지만 엄만 달이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고 좋지만 “


그 이후로도 딸과 달이에 대해 톡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 찍은 달이가 꽃 향기 맡는 사진도 보여줬다

이날 마치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하듯이 달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진을 찍었더랬다.

“달이야! 이거 냄새 맡아봐”하며 마치 사람에게 하듯이 포즈를 취해보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구름다리를 건널 때에는 고개를 내밀고 강을 보라고! 너 강 처음 보지 않냐고 하기도 하고!

달이가 난생처음 보는 것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주었다.

“달이야 이거 봐 이게 뭔지 알아? 이거 꽃이야”

달이는 이제 제법 산책을 한다.


엄마와 함께 하는 산책길에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다

어르신들은 달이를 유난히도 예뻐해 주시는 듯했다.

아마도 당신들이 시골 마당에서 키우던 개와 똑같이 생겨서일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달이는 내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에 있던 개와도 똑같이 생겼다.

달이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달이 사진을 찍어 가족 톡방에 올렸다.

달이 사진을 본 동생들의 반응이 모두 같았다.

"어? 쫄랑이네!"


달이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딸은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했다. 정말 마음먹은 대로 척척 해내는 딸이 대견하다. 살던 아파트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있음에도 이사하는데 힘들지 않게 방을 빼고, 방을 얻었다. 심지어 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단다.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역시 국어 선생님이라 다르다며 칭찬도 하셨단다. 늘 그렇듯 나는 겉으로는 조금 칭찬해 주고, 마음으로는 잔치를 벌였다. 알아서 척척 하는 것도 대견한데 알려주지 않은 부분까지도 잘하는 것을 볼 때면 든든하기까지 하다.


아침에 그렇게 톡을 하기는 했지만 정말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후시간에 잡힌 강의를 하러 강의 장소로 가고 있는데 딸에게 톡이 왔다.

"엄마, 나 지금 달이 데리러 가는 중"

짧은 딸의 톡을 보는 순간! 방금 전 문 앞까지 따라 나오려고 해서, 양말 신는데 자꾸 덤벼서, 옷 갈아입는데 회방해서 새로 산 운동화에 자꾸 코를 가져다 대서 야단쳤던 일이 생각났다. 살갑게 대하지 못했는데... 아침에는 그래도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말도 곱게 해 줬지만 자꾸만 나보다 먼저 내 앞길을 달려가려고 하는 달이를 보며, 내 발에 자기 코를 붙이고 쫓아다니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달이를 보며 핀잔을 주고, 야단만 쳤던 일이 생각났다.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이 집으로 데려가 새로운 잠자리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는 달이를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달이한테 엄마가 미워서 보낸 거 아니라고 말해줘"

"응 말해줬어"

딸은 이렇게 대답하며 톡으로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은 달이가 언니를 따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오는 길 지하철에서 쓰기 시작했다.

이제 집 비밀 번호를 누를 때 안에서 들리던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달이의 작은 낑낑거림이 안 들리겠지?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반쯤 현관을 벗어나 문 밖으로 나오던 달이를 욱여넣듯이 문을 닫지 않아도 된다.

내 집에 들어감에도 현관에서 벌이던 실랑이와 눈치게임을 안 해도 된다.

'허전하려나?'


집에 도착했을 때 우리 집은 오래간만에 고요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강냉이를 막 흘리며 먹어보았다.

침대에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걸터앉아본 게 언제인지...

이제 일부러 긴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아도 된다.


딸은 급했는지 소변 패드 놓는 고무 패드도 달이가 소리 내며 던지며 놀던 인형들도 놓고 갔다.

'달이가 이 인형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달이가 가고 난 빈자리가 느껴진다.

허전하다. 그런데 편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한동안은 달이 이야기로 나는 딸과 톡을 자주, 많이 할 것 같다.

달이야 곧 또 만나자! 그때까지 언니 말 잘 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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