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을 해 먹는 즐거움을 함께 배우는 시간
내가 만들면 맛없고
남이 해주는건 뭐든 맛있다.
나는 결혼 전에 외식을 정말 사랑했다. 밖에서 먹는 밥, 배달 음식들은 왜 이렇게 맛있을까. 치킨을 좋아해서 일주일 동안 날마다 치킨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집에서 먹는 밥은 그 맛에 그 맛인 데다가 내가 만들면 이건 무슨 맛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뭐하러 맛도 없는 걸 힘들게 만들어 먹나.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이렇게나 많은걸. 밖에 나가서 먹을 생각하면 그저 기뻐했다.
나는 카페도 진짜 좋아했다. 케이크랑 같이 먹는 차 한 잔은 참말로 행복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케이크.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차. 카페에 가면 꼭 케이크와 차를 세트로 먹었다. 나만의 소. 확. 행이었다. 직장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느낀 날은 어김없이 사 먹었다.
결혼 전에 외식비로 어마어마하게 썼다. ‘에이 오늘 그거 조금 아낀다고 부자 되겠어? 스트레스 쌓인 거 푸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고. 지금을 즐기자.’ 나름 보기 좋은 이유를 붙여 사 먹는 내 모습을 두둔했다.
첫째 아이 아토피는 5살이 되어서 너무 심각해졌다. 동생이 태어난 스트레스가 심해진 걸까. 팔이 접힌 곳, 다리 접힌 곳을 수도 없이 긁어서 몸에 상처가 끊이지 않았다. 잠자기 전에는 등을 긁어줘야만 잠들었다. 자다가 깨서 계속 긁었다. 울며 짜증 냈다. 제발 밤에 아이가 깨지 않고 푹 자면 좋겠다. 둘째 아이 신생아 육아보다 첫째 아이 돌보는 게 더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반강제로 해 먹게 되었다. 오늘 먹은 음식이 아이 몸을 만든다는 걸 깨닫고 아무거나 함부로 먹이는 게 조심스러웠다. 요리해서 먹는 일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 그동안 밖에서 쉽게 사 먹은 경험이 더 많은지라 밥 차려먹는 자체가 힘들었다. 게다가 내가 하면 이상하게 맛이 없었다. 만들어 본 적 없어서 시간도 많이 걸렸다. 10분 걸린다는 요리도 나에게 오면 40분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있으니 어떻게든 해야 했다. 아이 덕분에 내 모습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직장에는 사표가 있다. 너무 힘들면 그만두고 쉴 수 있다. 엄마라는 자리는 그렇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었다.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엄마라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없던 기술을 연습하며 갈고닦아야 했다. 자꾸 해보니까 알게 되었다. 밥솥에 밥만 있어도 밥상 차리기가 편하다는 것을. 하루 먹을 밥을 아침에 예약으로 미리미리 했다. 어느새 집밥을 잘 해먹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에서 쉽게 그려졌다. 손에도 잘 익었다. 그동안 못했던 건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고 안 해서 그랬다.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할 수 있었다.
엄마 내가 밥해보고 싶어요
첫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하는 건 뭐든 하고 싶어 했다. 아이가 5살부터 어린이집을 안 가게 되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가 밥하는 모습을 자주 보더니 자기가 하고 싶다고 그랬다. 지금까지 가르쳐본 결과 아이가 말할 때 하게 해 주면 효과가 제일 컸다. 이번 기회에 아이에게 밥하기를 가르치면 어떨까? 밥하기를 본격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에게 밥하기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단계를 작게 나눴다. 한 단계씩 알려주고 따라 해보게 했다.
밥하기 단계
1. 냉장고에서 쌀 꺼내기
2. 쌀을 컵에 담아 밥솥에 넣기
3. 쌀을 씻기
4. 물 양 맞추기
5. 밥솥에 넣기
6. 뚜껑 닫고 잠그기
7. 메뉴와 시작 버튼 누르기
아이가 할 때 쌀 씻기가 가장 어렵다. 쌀을 바닥에 안 쏟고 씻으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밥하기에서 아이가 가장 하기 쉬운 일부터 찾았다. 버튼 누르기였다. 아이는 기계에서 뭔가 누르는 걸 좋아하고 제일 먼저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버튼 누르기부터 가르쳤다. 우리 집은 현미밥을 먹기 때문에 메뉴를 4번 눌러야 했다. 몇 번 누르는지 보여준 다음에 아이가 하게 했다.
버튼 누르는 게 익숙해지자 뚜껑 닫고 잠그고 버튼 누르기까지 연결했다.
그 뒤에 솥 넣기를 했다.
다음으로 물 양 맞추기를 알려주었다. 눈금이 현미 3에 오도록 물을 담았다. 그런 다음 쌀을 밥솥에 3컵 넣는 것을 했다.
마지막에 쌀 씻기를 가르쳤다.
밥하기에서 쌀 씻기가 실수하게 제일 쉬운 부분이다. 가장 쉬운 것으로 시작해서 어려운 것까지 차근차근 배우고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한다. 5살에 어느 정도 하게 되더니 7살이 된 지금은 혼자 밥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랐다. 지금은 28개월 3살인 둘째 아이랑 밥하기를 하고 있다. 오빠가 하는 걸 보더니 자기도 하겠다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밥하기를 가르칠 때에는 가장 쉬운 버튼 누르기부터 하나씩 연습하는 게 좋다. 그래야 아이들이 성취를 금방 느끼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가르칠 때 순서대로 가기보다는 쉬운 단계부터 하게 하면 아이들이 금세 잘 배운다.
밥하기를 시작으로 아이랑 함께 반찬을 만들어 먹는 것도 연습하고 있다. 이제는 몇 가지 요리는 책이나 인터넷을 찾지 않아도 뚝딱뚝딱 만들어 먹는다. 아이도 하다 보니 혼자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생겼다. 내가 만들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국도 맛있게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외식하는 날이 거의 없어도 크게 힘들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아이랑 쉽게 차려 먹고 있다. 엄마가 되어서 나에게 일어난 변화가 놀랍다.
나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알면 좋겠다. 진짜 내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는 힘들다고 아무거나 사 먹는 게 아니다. 스트레스가 쌓인 날일수록 나에게 따뜻한 한 끼를 차려주는 게 나를 사랑하고 제대로 위로해주는 행동이다.
이제 나는 안다. 소중한 내 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족에게는 어떤 것을 주는 게 좋은지를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랑 같이 밥을 한다. 반찬을 만든다. 그동안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며, 힘들다며 안 하고 싶어 했던 밥해먹기가 내 몸과 우리 식구를 살리는 중요한 분야였다. 그러면서 아이랑 함께 하는 추억도 쌓아간다. 내가 밥하려고 할 때 아이가 뛰어와서 말한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