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특별하고 위대한 날
나이가 들어서 인지 요즘은 생일이 와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생일 선물도 예전 같으면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지만, 요즘에야 평소에 생일날보다 더 잘 먹기도 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기다려지는 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가?
초등학생 때에는 크리스마스나 생일이 가장 가슴 두근거리는 날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선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생일 카드나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 행복한 기쁨을 맛보았던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은 다만 추억의 단편일 뿐이다.
예전엔 누가 생일을 챙겨주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으로 괜히 심술을 부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하고 살았었는지 뒤를 돌아보게 된다. 생일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축하받는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나의 곁에 함께 있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와 삶을 함께해 주는 이들에 대한 감사를, 나의 생일을 함께 보내주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정을 나누는 날로 말이다.
내 생일은 음력 십일월 중순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모두 태어난 날을 음력으로 했기 때문에 내 생일도 마찬가지다. 생일이 음력 십일월 중순이다 보니 양력으로는 십이월 크리스마스 전이나 후일 때가 많다. 어떤 해는 생일이 사라지고 없다가 어떤 해는 연초에 한번, 연말에 한번 이렇게 두 번이나 들어있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들쭉날쭉한 생일날이 영 헷갈리기 일수다. 없는 해에는 다들 장난스레 웃으면서 좋다고 하다가, 한해에 두 번일 때는 영 못마땅한 듯 한 번으로 끝내자고 하니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억울하고 못마땅하다.
요즘에는 생일을 잊고 넘어갈 때가 있다. 이럴 때 가족이라도 챙겨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정말 그냥 넘어가 버린 후 며칠 지난 후에야 조금은 섭섭한 듯‘생일 지나갔네’라는 말만 할 뿐이다. 그럴 때면 갑자기 낯선 사람들 속에 서 있는 양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다지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특별한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도 없지만, 괜히 마음이 상하고 외로워지는 것만 같은 감정에 북받쳐 혼자서 거리로 나와 포장마차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며 자신을 괴롭힌 경험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그건 누군가의 따뜻한 축하와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 앞에서 노래라도 함께 부르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생일?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해?'라며 애써 나를 속여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지금은 달력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두 개씩이나 표시해 놓고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 보면 내가 생각해도 정말 우습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생일은 내가 군대 생활을 하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병일 때였다. 날마다 고된 훈련으로 생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느 날, 중대 본부 선임하사가 빵 케이크와 초를 사 들고 막사로 찾아와 "오늘 너 생일이라며? 축하한다"라고 하며 케이크에 촛불을 켜놓고 부대원 모두가 둘러서서 삼삼칠 박수로 축하해 주던 그때의 생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 일은 두고두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생일에 대한 잔잔한 감동을 지켜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 년에 한 번 생일을 맞는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 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한 날이니 얼마나 특별하고 위대한 날인가? 가족이나 친구들의 따뜻한 축하와 촛불 켜진 생일 케이크를 앞에 놓고 ‘해피 버스데이 투유’ 노래와 함께 손뼉을 치며 모두가 함께 환하게 웃는 그 시간이 우리 삶의 또 하나의 작은 행복이 아닐까.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생일을 맞는 당사자는 은근히 기대하며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생일날,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내가 세상에 태어났음을 감사히 생각하고 그날을 기억하며 축하해 주면 좋겠지. 음력이라 나조차도 가끔 까먹는 생일을 기억해주면 정말 좋겠지만,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조차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생일을 올해도 누군가 기억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