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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사망신고와 가족관계 증명서

아빠가 돌아가신지 2주가 흘렀다. 2주의 의미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 왔음을 의미했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한달 안에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가족들은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대한 늦추고 싶어했다. 사망신고를 하는 순간 정말로 아빠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만도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혼자서 사망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사망신고를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손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신고하러 간다는 것인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는가. 단순히 행정상의 절차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엄마는 사람의 감정을 간과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동행하겠다고 했다. 마침 외근 때문에 외출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잠시 들르면 되었다. 

엄마에게 동 주민센터의 위치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아빠와 여러 번 왔었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아빠와 차로 이동했을텐데 정확한 위치를 엄마가 알고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확신했다. 일단 엄마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함께 동행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엄마는 당당하게 앞장서서 골목길을 찾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나의 합리적 의심이 틀리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 동 주민센터를 찾는데 30분을 헤맸다. 

무거운 노트북을 매고 30분을 걸었더니 내 몸은 이미 지칠데로 지친 상태였다. 도착한 후 서류를 작성해야 하지만 사망신고 관련한 서류를 찾을 수 없었다. 엄마가 직원에서 방문한 사유를 말했더니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리라는 답변 뿐이었다. 무뚝뚝하고 친절하지 않은, 약간은 기분 나쁜 답변이었다. 어쨌든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렸고 3분 후 즈음에 우리 차례가 되었다. 직원에게 방문한 목적을 말했더니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작성이 필요한 항목들을 체크한 후 사망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사망자 이름, 주민등록 번호, 사망 시간, 사망 장소, 그리고 사망자와의 관계 및  주민등록번호 등등에 대해 작성해야 했다. 

사망신고서와 사망진단서(검안서)를 제출하고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했다.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사람을 행적으로 떠나보내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해서 엄마한테 증명서를 대신 떼어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다. 가족 관계서를 떼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누구를 주체로 하느냐에 따라 가족관계서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때 엄마는 엄마 본인을 기준으로 가족 관계서를 떼었기 때문에 이미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성함이 있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이름 옆에는 사망이라는 글자가 눈에 보였지만 외할아버지는 사망이라는 표시가 없었다. 처음에는 외삼촌이 외할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외할아버지의 출생일과 사망일이 공란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공백은 ‘사망’이라는 글자보다 더 가슴아픈것 같다.

사망신고를 끝내고 엄마와 나는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야 했던 나를 위해 엄마는 함께 걷겠다고 했다. 엄마가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 역시 사망자에 아빠 이름을 적는 순간부터 눈물이 흐르면서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아빠를 두 번 죽이는 것 같았고 내 손으로 아빠를 떠나 보내는 것 같았다. 

지하철 역이 가까워오자 나는 엄마에게 이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 했지만 엄마는 좀 더 걷고 싶다고 했다. 지하철 역에 가까워오자 떡집에 눈에 보였다. 분명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어 떡 몇 개를 계산하고 빨리 엄마가 있을 만한 곳으로 뛰었다. 다행히 엄마를 만났고 떡을 손에 쥐여주면서 저녁 대신 먹으라고 했다. 업무 이후 사람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굶고 있을 엄마가 걱정되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고스란히 견뎌야 할 엄마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떡이라도 손에 건네 주고 싶었다. 다음날 엄마는 그날 저녁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엄마는 좀 걷고 오겠다며 매일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엄마가 걷는 이유를 단순히 건강과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간병으로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던 엄마는 주로 먹는 것으로 해결했었다. 그래서 몸무게가 늘면서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걸었던 이유는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몇일이 지나서야 엄마는 매일 걸었던 이유를 말해주었다. 아빠가 생각나고, 미안하고 그리웠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좀 괜찮아졌다고 했다. 

살아남은 가족들은 그렇게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슬픔을 극복해가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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