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영 Sep 14. 2022

그립고 또 그립다

나는 가끔 퇴근길에 라디오를 듣는다. 붐비는 지하철 속에서는 휴대폰을 보는 것 조차 여의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아..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사람 사는 것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라디오를 들을 때 가장 공감할 수 없는 단어가 있었다. ‘그립다’는 말이었다. 오늘은 더욱더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립다는 사연이 나올 때면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함께 있어서 보고 싶다는 감정이 생길 리가 없었다. 공부하느라 1년간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에도 가족들이 그립다는 것은 없었다. 보고 싶다는 감정이 생긴다면 전화로 목소리를 들으면 되기 때문에 ‘그립다’라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립다’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보고 싶지만 절대로 다시 볼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단어였던 것이다. 미안한 것이 많아도 절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단어가 ‘그립다’라는 단어였던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한주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처리해야할 행정적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빠의 빈자리를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그리움이 커져갔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건강했을 때의 아빠가 아니라 많이 아팠을 때의 아빠이다. 어렸을 때에는 아빠와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아빠가 건강했을 때를 기억하는 것이 어렵다. 아팠을 때의 아빠는 대화가 힘들 정도로 힘들어했기 때문에 좋은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모습이라 뇌리에 오래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매일 아빠가 그립고 또 그립다. 어제보다 오늘 아빠가 더 그립고 오늘보다 내일 아빠가 더 그리울 것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면 좋겠다. 한쪽 가슴이 뻥 뚫린 채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갈 자신이 없다. 간절히 바래본다. 또 한번 가슴이 뻥 뚫리는 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이전 23화 사망신고와 가족관계 증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