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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엄마의 서운하다는 말

아빠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서둘러 간지도 3개월이 흘렀다. 코로나19 덕분에 아빠를 잃었지만 코로나19 덕분에 엄마 곁에서 일할 수 있었다. 여전히 재택근무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외근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중간중간 엄마와 대화를 하고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이 벌써 3개월째이다. 이 기간동안 엄마는 내 존재만으로도 많은 위로와 의지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빠와 부녀 관계였고 그마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미우니 고우니해도 45년을 함께한 세월이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빠와 그런 아빠가 힘들다는 엄마는 한 사람이 떠날 때까지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마의 시집살이는 꽤 고되었다고 했다. 첫번째로 가난이 힘들었고, 두번째로 가난 때문에 노동 시장으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엄마의 처지가 힘들었다고 했다. 아빠의 월급은 늘 할머니가 챙겼고, 엄마는 얼마 안되는 생활비를 받아 썼다고 했다. 

갖 시집을 와서 나와 동생을 낳은 후에도 엄마는 친정에서 조금씩 돈을 얻어 썼다고 했다. 사는것이 너무 힘들고 앞날이 캄캄하여 어느 날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목적지 없이 길을 걷는데 서럽고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동네 아주머니가 엄마를 설득해서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했다. 딱히 갈 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해서 엄마는 못이기는 척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어느날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도망을 갈꺼면 나와 동생을 버리고 갔어야지, 독하게 마음 먹고 혼자 갔어야지’, 엄마는 그제서야 ‘그래, 그랬어야했는데..’라고만 하셨다. 

이렇게 길고 질긴 인연이 우리 엄마와 아빠이다. 엄마는 늘 아빠의 성질에 주눅들어 살면서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에 헛헛해 하셨다. ‘조금만 더 살지’라며 아빠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더 안타까워하셨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적어도 엄마는 좀 편안하고 자유롭다고 느낄 줄 알았다. 아빠 때문에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셔보지도 못했고, 여행한번 맘 편하게 해보지 못한 엄마였다. 또 때가 되면 갖가지 김치를 담그느라 늘 힘들어하셨다. 그랬기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신 후 좀 편안함을 느끼실줄 알았다. 

그런데 부부란 참 이해하기 힘든 관계인 것 같다. 엄마는 아빠가 그립고 안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의 빈자리 때문에 슬프고 아팠다고 했고 마음이 헛헛하다고 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는 순간부터 자식들에게 서운함이 많아졌다고 하셨다. 

나는 예전보다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일 아니면 엄마 옆에서 일하려고 하고, 가능하면 친구들과 약속을 피하고 엄마와 식사를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3개월은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엄마와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나의 사소한 짜증도 엄마에게는 많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를 괄시한다.’ ‘나만 따돌린다.’라는 말을 종종 하신다.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끔 엄마한테 짜증났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나의 작은 짜증에도 엄마는 서운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더 조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가끔 혼자라고 느끼는 것 같다. 남편이 있었을 때에는 아빠가 늘 엄마 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아빠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대상이 없어졌으니 엄마는 나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얼마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이 줄어들면서 재택근무가 끝났다. 앞으로 출근해야 한다고 했더니 엄마는 꽤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그동안 너가 재택근무를 하면서 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무서운것도 헛헛한것도 많이 없어졌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 걱정이 앞섰다. 나는 앞으로 회사에서 사람들에 치여 일을 하다보면 아빠를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오롯이 혼자 남겨진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낼까?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오늘도 잠을 이루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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