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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졸업사진

어렵고 힘들게 공부한 대학원 과정은 올해 2월에 끝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많아지면서 좀 수월하게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공부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중도는 떨어졌고 혼자 과제를 해야했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2월에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기간동안 나는 철저히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 엄마와 아빠는 내 공부를 위한 조력자였다. 잠이 부족한 나를 위해 아빠는 운전기사 역할을 해주었고 엄마는 내 생활의 많은 부분들을 챙겨주었다. 엄마와 아빠의 희생 덕분에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졸업을 하게된 것이다. 

졸업도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공식적인 행사는 하지 않았다. 단지 졸업 가운을 빌려 증명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모인 원우들과 가족들이 사진을 찍는 행사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졸업 가운을 입은 증명사진과 함께 가족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체했다. 내 단독 사진과 가족들이 모두 함께한 사진을 찍는 데에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주시는 분은 기계적으로 다음 손님을 받고, 이전 손님에게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가족 사진을 찍는데 사진을 찍어 주시는 분은 나와 동생을 부부로 오해했다. 그리고 엄마는 엄마 나이 그대로 봐줬지만 아빠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아빠는 그 말이 내심 서운했던 것 같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내내 별말이 없었다(이때의 아빠 상태는 동생이 부축한 상태로 겨우 걷는 것만 가능할 정도였다. 최소한 도움을 받더라도 걷는 것은 가능했다). 그리고 한달 후 즈음에 파일로 사진을 받았다. 받은 사진을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었다. 엄마는 턱이 이상하게 나왔다면 수정하면 좋겠다고 하셨고, 아빠는 ‘나만 초라하네’라고 하셨다. 그때 아빠는 항암 치료로 머리가 모두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모자를 쓰고 계셨고, 몸무게는 10kg이상 빠진 상태에서 기존의 옷들이 모두 컸었다. 그러니 아빠가 상대적으로 더 나이들어 보였던 것이다. 아빠는 사진을 보더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계속 잠만 잤으니..

그리고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3개월 후에 졸업 앨범을 받았다. 아빠와 함께 봤었던 그 사진이었다. 아빠가 없는 상태에서 졸업 앨범을 받아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간신히 졸업 앨범만 찍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딸 졸업식이라고 걷는 것도 힘겨웠던 몸을 이끌고 함께 사진관을 방문하고 사진을 찍었던 아빠가 또 다시 떠올랐다. 특히 전날부터 어떤 모자가 어울릴지 고르는 아빠가 생각났다. 나는 아빠에게 졸업 가운을 입혀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하지만 사진관에서 기다리는 다음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빠의 민 머리에 베레모를 올려주고 사진 한 컷 못 찍은 것이 지금도 후회로 남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빠와 관련된 일들이 부지불식간에 나타나서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슬픔은 나의 지난 잘못된 행동과 말들 때문이다. 

지금도 수시로 나의 못된 행동들이 수시로 떠어른다. 내가 빵이라도 사들고 오는 날이면 엄마는 늘 아빠를 먼저 챙겼고, 엄마 본인이 좋아하는 빵 한 조각 먹지 못했다. 그것이 늘 안타까워서 엄마 빵을 따로 떼어놓고 아빠에게 빵을 드렸다. 

어느 날은 엄마가 고등어를 구웠다. 작은 고등어를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먹기에는 양이 작아 보였다. 나는 엄마 아빠를 위해 거의 먹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가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혹시라도 엄마 몫이 없을까봐..아마도 아빠는 내 눈을 의식했을 것이다. 아빠 역시 조금 먹더니 숫가락을 내려 놓으셨다. 배불리 많이 먹었다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못된 딸이었다. 그래서 내 죄책감은 시간이 갈수록 이자에 이자가 붙어 불어나고 있다. 사과해야 할 당사자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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