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때문에 늘 잠만 자던 아빠를 보면서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 약해진 아빠가 얼마나 더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을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언젠가 엄마도 이 세상에 없으면 나는 고아가 되겠구나.. 물론 동생이 있겠지만, 동생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다. 늘 그래왔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 손을 잡고 어디든 함께 다녀야 했고, 동생이 어딘가에서 얻어 맞고 집으로 돌아오면 누가 그랬냐고 물어서 꼭 복수를 해줘야 했다. 그렇게 동생은 늘 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해왔다.
늘 아빠가 미웠지만 그만큼 아빠를 의지해왔다는 것을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빠의 부재로 누군가는 집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나라는 것도 늦게서야 알게되었다. 나는 당연히 엄마나 동생이 아빠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 역할을 거부했고 동생은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야할 때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물론 내 성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유별나게 책임감이 강했기 때문에, 혹은 일을 쌓아 두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챙기기 전에 먼저 해치워야 하는 내 성격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집안의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행사를 처리하는 것은 이제 모두 내 몫이 되었다. 그래서 끔찍이도 싫어했던 아빠의 역할을 내가 받게 되면서 내가 더욱더 아빠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이 아빠와 오롯이 마주해야 하는 날이 가장 많았으니까..
어쨌든 나는 이제 가장이 되었다. 엄마를 챙기는 것도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도 모두 내 몫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나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도 결혼도 하지 않은 나였다. 그런 내가 누군가를 챙기고,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분명 아빠가 있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하나 둘씩 나는 내 생활을 포기하게 되었다.
계획했던 박사과정을 포기했고, 저녁에 평안하게 독서를 즐기는 여유도 포기했다. 그 대신 하루 종일 고독한 하루를 보냈을 엄마를 위해 내 시간을 내어주게 되었다.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묻고, 또 묻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엄마가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의 의무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 중에 내가 유독 더 아빠의 빈자리를 많이 느꼈고 아빠에게 더 많이 미안했다.
왜 지난날에는 아빠의 고마움을 몰랐던 것일까? 왜 한번이라도 아빠가 느꼈을 무거운 짐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일까?
아빠는 분명 내가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을 느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라서 다 받아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