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영 Sep 14. 2022

아빠의 차

나는 운전을 못한다. 운전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단 한번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아빠의 영향이 컸다. 우리 집은 지하철 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버스가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면 됐지만 아빠는 딸이 고생하는 것이 싫었던지 늘 운전 기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암을 진단받은 이후 본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도 운전 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늘 엄마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아빠의 부재가 컸을 엄마를 위한 것이었다. 장을 보고, 병원을 가고, 가까운 친척을 방문하는 일 등 모두 아빠의 동행이 있었다. 아빠의 성격이 너그러운 편은 아니어서 운전하면서 엄마에게 짜증도 많이 내셨지만 절대 엄마 혼자 보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가까운 장소도 버스로 이동하면 많이 헤매신다. 그래서 결심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내가 운전을 해야겠다고.. 뿐만 아니라 엄마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엄마가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께 많은 곳을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경우는 재택근무이기는 하지만 외근도 많았고, 일단 일을 시작하면 아빠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것은 동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집에서 아빠를 그리워하며 하루종일 집에서 보내고 있을 것이 뻔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하루종일 슬프고 아빠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운전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당장 운전연수를 받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요즈음에는 강사분이 집앞까지 와주셔서 연수를 해준다고 했다. 10시간에 25만원이라는데 절대 싸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이트에서도 연수과정이 25만원으로 동일했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이미 장롱면허 15년이고 40대 중반에 다시 시작한 운전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몹시 두려웠다. 하지만 두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하루라도 빨리 운전을 잘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운전 연수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초보운전임을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고 했다. 연수 진행에 앞서 초보 스티커를 구매하고 처음으로 자동차 문을 열고 아빠의 자리에 앉아보았다. 그동안 엄마와 아빠의 밭일로 차 바닥은 흙이 많았고 방향제가 없어서인지 차안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차 안에는 더 이상 동작하지 않은 블랙박스와 아빠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는 장식품 아닌 장식품이 전부였다. 

매일 아빠가 운전했던 차를 타면서 한번도 아빠의 휴대폰 번호 표시가 있었다는 것과 블랙박스가 작동하지 않는 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차 역시 아빠의 흔적들로 가득했지만 아빠가 사용했던 물건들은 낡고 볼품없었다. 아빠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는 표지판에는 스티커가 끈적끈적한 상태로 있었고, 어디에선가 공짜를 얻은 것이 분명했다. 트렁크에는 밭일에 필요한 도구들이 전부였다. 

방향제, 블랙박스, 휴대폰 부착 장식품을 구매하는 그날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10년 넘게 나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5년 정도 회사가 멀어서 4시 40분에 출근했던 적도 있다)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는 모든 시간을 나는 대화 한마디 시도하지 않았다. 또 아빠의 차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러니 블랙박스가 당연히 동작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끔 아빠는 대화를 시도하셨다. 분명 큰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을텐데 나는 주로 자는 척을 하거나 정면만 응시했을 뿐이었다. 

오징어 젓갈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봄, 가을이면 바닷가에서 신선한 오징어 젓갈을 사다 주던 아빠의 마음을 한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빠의 전화번호가 적힌 장식품을 좀 더 좋은 것으로 사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원도 안되는 방향제를 아빠에게 선물했다면 아빠는 그것을 차에 가져다 두면서 입가에 미소가번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 딸이 최고네’. 한 번만이라도 이 말을 아빠의 목소리로 들어봤으면 좋겠다.

이전 21화 추억이 없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