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혼자 남겨진 엄마가 걱정이었다. 괜찮다고는 말하고 있지만 엄마의 공허한 눈빛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특히나 자식들의 도움 없이 혼자 스스로 아빠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하면서 남몰래 흘린 눈물은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런 엄마를 위해 많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려고 노력했다. 평일 퇴근 이후의 시간과 주말은 오롯이 엄마와 함께 했다. 가급적이면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도 않았고 계획했던 박사과정도 잠시 미뤘다. 그럼에도 엄마는 혼자서 보내야하는 시간들에 예민해 했다. 저녁 늦게까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내 방에 가려고 하면 엄마는 ‘벌써 가?’라고 말하곤 했다.
대부분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는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가급적 엄마가 그런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 엄마 앞에서 아빠 얘기를 거리낌없이 했다. 평소의 나 같지 않은 태도였다. 나는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얘기들은 절대로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있었던 좋지 않은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으면 섭섭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아빠가 좋았던 이야기, 아빠에게 고마웠던 이야기, 아빠가 미웠던 이야기 등등 아빠가 생각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와 시시콜콜하게 떠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였지만 엄마가 빨리 털어 버리기를 바랬다. 하지만 내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엄마 역시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예전처럼 밝지도 않았고 활동적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답답하다며 매일 걷고 오겠다며 나가시곤 했다.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키워보라고 권했지만 싫다고 하셨다. 나이 먹어서 강아지 뒤치닥거가 귀찮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엄두도 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식물이었다. 엄마의 식물 키우는 솜씨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이미 수차례 식물을 죽인 이력이 있다) 엄마가 다른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이 있기를 하는 바램에서 엄마와 동네에 있는 화원에 방문했다.
봄이라서 그런지 화원에는 꽃을 사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형형색색의 꽃들과 화초들로 화원은 생동감이 넘쳤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꽃의 생명주기는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꽃 보다는 화초 위주로 사기로 했다. 엄밀히 꽃 자체에 대한 생명이 짧기도 했지만 엄마의 솜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꽃들의 자태를 멀리할 수도 없어서 결국 화초 3개 꽃 3개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화분에 옮겨 심을 준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집 앞마당으로 향했는데, 엄마는 꽃 하나를 큰 화분에 옮겨 심고 있었다. 그런데 화분에 넣을 흙이 일반 흙이 아니었다. 이 흙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화분에 넣을 전용 흙이라고 했다. 그럼 이 흙은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매년 아빠가 화분 갈이 혹은 새로운 화초를 사다 키울 목적으로 사다 놓는다고 했다. 또다시 눈물이 흐르고 목에 메인다. 왜 나는 아빠가 이런 일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아빠는 예쁜 것보다는 실용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꽃이나 화초보다는 고추, 오이, 호박과 같은 채소를 심는데 관심이 많았고 또 많은 시간을 이것들을 키우는데 쓰셨다. 내가 아는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틀린 것이다. 아빠도 사람이었기에 예쁜 것에 눈과 손이 갔던 것이다. 왜 단 한번도 아빠를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가 모르는 아빠의 또다른 모습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일까? 그런데 너무 늦었다. 아빠에게 여러 모습이 있었더라도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모습들을 알 수 없을 것이다.또 다시 후회와 미안한 암덩어리가 내 몸속에서 커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그리움이 커져가고 있으니 삶이 버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