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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konohime Mar 12. 2020

4. 아빠, 사랑해요.

아빠에 대한 기억

1970년대 하월곡동


우리 부모님이 사택을 벗어나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 하월곡동에 있었다. 이 당시에 엄마의 배에는 나와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막내 남동생이 들어 있었다. 이 집에 살 때 나는 아침마다 대문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었다. 우리가 살고 있던 안방 맞은편 방에는 헝겊 털 인형을 만드시는 아저씨네 부부가 사셨다. 그 방에 놀러 가면 분홍색, 주황색, 하늘색 등 다양한 색깔의 곰, 강아지, 코끼리와 같은 예쁘고 보드라운 동물 인형들이 잔뜩 있었는데, 그 집에는 딸이 없었기 때문에, 그중 여러 개의 인형이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이 집에 사는 동안, 엄마는 막내 동생을 낳을 즈음에 늑막염이라는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아빠도 엄마보다 먼저 퇴원을 하긴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병원에 입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철없는 어린아이였던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 대신 우리들을 돌보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이모나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에 가서, 병문안을 오신 분들이 들고 온 커다란 깡통에 든 미제 오렌지 주스를 따라 마시거나 복숭아 통조림을 먹으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동안 아빠가 나에게 분홍색 새 원피스를 사준 적이 있는데, 나는 혼자 마루에서 새 옷을 입고 신나서 빙빙 돌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는 소파 탁자 모서리에 콧등을 찧었다. 손에 피가 묻은 걸 보고 놀란 마음에, 어른들을 부를 생각도 못하고 혼자 코를 감싼 채로 소파에 엎드려 있었는데, 잠시 후 아빠가 방에서 나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었으나, 그때 생긴 흉이 아직까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나중에 엄마가 해 준 이야기인데, 이 집으로 이사 들어가기 전날 밤 이 집에서 흰 상여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미신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집에 사는 동안 몇 가지 안 좋은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고, 엄마 아빠는 서둘러 이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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