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 대한 기억
아직 막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이었으므로 1976년 이전이다. 내가 살았던 두 번째 집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대궐 같았다는 느낌이다. 내가 그런 집에서 살아 봤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이 집도 아빠가 다니던 회사의 사택이었고, 하나의 집에 한옥과 양옥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우리는 한옥의 본채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 맞은편 사랑채에는 잠깐 다른 가족이 산 적이 있었다. 양옥에는 신식 욕실이 있었던 것 같고, 어느 날 들어가 봤던 빈 방 하나가 엄청나게 컸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퇴근 후 가끔 그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나왔다. 아빠는 이때 팬티만 입고 나와 한옥 마당을 걸어 본채로 들어갔는데, 엄마가 웃으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애들이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녀요.”
엄마는 이 집에서 버리는 달력 종이에 커다란 시계를 그리고, 누가바를 먹고 남은 나무 스틱으로 시계의 작은 침과 큰 침을 만들어서, 나와 첫째 남동생에게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 줬었다. 달력 시계를 가운데 놓고 방에 셋이 앉아 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아빠의 친한 회사 동료 분이 근처에 사셨고, 그 집 막내딸인 현경이 언니가 나와 비슷한 또래여서 자주 어울리며 동네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엄마 아빠와 함께 현경이 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내 생애 처음으로 그 당시 미제 가게에서만 구할 수 있었던 토마토케첩을 먹어 보게 되었다. 아줌마가 그 집 언니들과 오빠는 잘 먹는다며 케첩에 밥을 비벼서 주셨는데, 일단 빨간색으로 변한 밥이 너무 이상하게 보였고, 된장찌개 같은 음식에 길들여진 나와 동생은 금세 적응할 수 없었던 맛이어서, 한 숟가락을 먹어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는 먹지 못했다. 현경이 언니네 집과는 그 동네를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고, 현경이 언니네 아줌마와 아줌마의 쌍문동 동네 친구였던 민준이 아빠 고모님의 주선으로 나와 민준이 아빠가 나중에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나중에 한 말인데 이 집은 내 기억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엄청 큰 집이었고, 소위 부자들이 식모를 부리면서 사는 집이었다고 한다. 그 집에 사는 동안 아빠가 늦게 들어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겁이 많았던 엄마는 큰 집에서 홀로 엄청 무서웠다고 한다.
이 시기에도 아쉽지만 아빠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