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 대한 기억
내가 태어나서 처음 살았던 집은 종로구 적선동에 있었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의 사택이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일이고, 나는 아주 어릴 때였으므로 제대로 된 기억은 없지만, 우리 가족 말고도 두 가족이 함께 사는 한옥 집이었다. 그중 택상이 오빠네 집과는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온 후에도 한동안 엄마와 그 집 아줌마가 서로 연락하면서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택상이 오빠가 나를 귀여워했다고 했고, 내 기억에도 당시 초등학생이었는지 아니면 중학생이었는지 모르는 그 오빠를 상당히 좋아해서 잘 따랐던 것과, 오빠 방에 가끔 들어가 오빠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장면 등이 남아 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그리고 큰집과 우리 집에 번갈아 가며 계셨던 할머니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집에서 엄마가 첫째 남동생 성민이를 낳던 날을 내가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나는 마당에 있었고, 어느 순간 할머니가 아들이 태어났다고 싱글벙글하시면서 엄청 좋아하셨던 일을 기억한다.
할머니는 동네 마실을 다니실 때 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다른 어른들과 함께 주전자에 받아 드시던 막걸리를 나에게도 먹이곤 하셨는데, 어린아이가 막걸리를 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으니 어른들이 재미있어하셨다. 저녁 즈음에는 그 집에 사는 아이들 모두가 한 방에 모여 그 집에 하나 있던 다리가 네 개 달린 흑백 TV 앞에서 “요술 공주 세리”나 “황금 박쥐”와 같은 만화를 보곤 했다. 이웃에는 손가락이 온전하지 않은 손을 가지고 있던 또래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막대 사탕을 빨아먹으면서 동네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이 시기에는 아빠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