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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konohime Apr 14. 2020

8. 아빠, 사랑해요.

아빠에 대한 기억

2000년대 상도동


민준이가 태어난 후 나는 두 달 동안의 출산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해야 했고, 민준이를 돌보는 일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매일매일 민준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했기 때문에 엄마네 집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퇴근 후 엄마네 집에서 저녁밥을 얻어먹는 건 예사였고, 주말에 우리 집에서 먹을 반찬까지 엄마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생활을 2년 정도 하다가 엄마네가 같은 동네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엄마 아빠는 여태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엄마도 따뜻한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아 보라고, 아빠가 미분양된 아파트 한 채를 계약했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던 날, 마치 내가 집을 사서 이사하는 것처럼 너무나 기쁘고 설레었다. 


아빠는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이 너무 좁으니 엄마 아빠가 살던 집으로 이사를 하라고 했다. 돈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우리 맘이 편치 않아 시세보다 훨씬 낮은 전세금을 치르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집에서 민준이는 자기 방과 침대를 갖게 되었다.


이 집은 주택이다 보니 좀 불편한 점이 있긴 했는데, 겨울에 동파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는 점이다. 어느 해 겨울, 예년보다 많이 춥다는 겨울이었다. 설 명절 동안 우리는 서산에 있는 시댁에 다녀와야 헸는데, 마침 서울로 올라오는 날 기온이 뚝 떨어졌었다. 우리가 시동생들과 함께 집에 도착하니 엄마 아빠가 드라이어로 언 보일러를 녹이고 있는 것이었다. 

“왜 엄마 아빠가 결혼한 딸네 집에 와서 이런 거까지 하고 있어? 날씨도 추워 죽겠는데… “

“민준이도 있는데 보일러가 얼면 안 되잖아.”

“얼면 우리가 해결하면 되지 왜 엄마 아빠가 이런 걸 신경 쓰냐고?”

엄마 아빠는 대꾸도 안 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고, 결국 보일러가 작동되는 걸 보고, 시동생들 먹고 가라고 주문한 중국 음식도 안 드신다 하고 집으로 가버리셨다.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면 아빠가 언젠가 나한테 웃으면서 했던 “딸은 이쁜 도둑”이라는 말이 생각나 속이 많이 상한다.


나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아무래도 살고 있던 집과 엄마네 아파트는 거리가 좀 있어서 민준이를 아침저녁으로 데리고 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에, 엄마네 아파트에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전세 물건이 있다고 해서 보러 가니, 신기하게도 엄마네 바로 옆집이었다. 그 아파트는 복도식 아파트로, 복도 양 끝에 큰 평수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평수의 집 세 채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구조였다. 엄마네 집은 맨 끝이어서 우리 집에서 작은 방 창문을 열면 엄마 아빠가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볼 수가 있었다. 민준이는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고, 작은 방을 쓰던 민준이는 엄마 아빠가 지나갈 때마다 창문을 통해 인사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즐거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 중 하나다.


3년 정도 그 집에서 살다가 집주인들의 사정으로 두 번 더 이사를 하고 마지막에는 그 아파트에 우리 집을 장만했는데, 2017년 그 아파트를 팔고 떠나기 전까지 엄마네와 같은 동 같은 라인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엄마는 음식을 할 때마다 우리 것까지 해서는 엄마가 직접 갖고 올라오기도 하고 아빠를 보내기도 했다. 우리도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엄마네를 챙기려고 노력했다. 민준이는 여전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았는데, 좀 자라고 나서는 할머니네 가 있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다.


어찌 보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결혼 후에 친정과 가까운 데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오랫동안 엄마 아빠 근처에 살아서 든든했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엄마 아빠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딸이 근처에 살아서 귀찮지만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난 애교가 많은 딸이 아니어서 이런 마음을 마음에 품을 줄만 알지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할 방법은 몰랐다. 나는 왜 좀 더 상냥하고 친절한 그런 딸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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