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CM Tiger Sep 05. 2024

프롤로그

한달간의 짧은 출장이 장기 파견으로.. (Feat. 코로나)

"베트남에 한 달만 다녀오시면 됩니다. 직원들과 얼굴도 익히고, 업무도 파악하세요. 한 달 후 한국으로 돌아와 신변 정리를 하고, 정식 파견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들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한 달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몇 달 전부터 시작됐다. 한국 본사는 베트남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난관을 마주했다. 서류 준비, 법적 절차, 그리고 현지 주주들과의 협상까지, 모든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특히,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권자가 한 가지 사안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협상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결국 내가 직접 베트남으로 가야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명 1박 3일 초단기 출장. 나의 목적은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혹시나 협상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수개월간 고생했던 현지 주주들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하는 것이 또 다른 중요한 임무였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베트남에 도착해 저녁 즈음, 최대 주주를 만나기 위해 낯선 골목에 들어섰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낯선 향취가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소박한 맥주집에 앉아 그와 만났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손짓, 발짓을 더하며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길고 복잡했지만, 결국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고, 나는 그날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본사의 누구도 이 성과를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만의 작은 승리였다.



그 후의 일들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모든 의사결정권자의 승인이 떨어졌고, 이제는 베트남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누군가 현지에 파견되어야 했다. 내심 기대는 했지만, 정말 내가 적임자로 선택되어 베트남 주재원으로 발령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인수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한 베트남 정부의 서류 작업과 노동 비자 및 거주증 발급까지는 약 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나는 본업에 집중하며 틈틈이 베트남의 생활과 비즈니스 환경을 조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바이러스가 확산되며 각국은 국경을 봉쇄하기 시작했고, 하늘길이 하나둘씩 막히기 시작했다.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상황은 악화되었고, 본사에서는 불안해했다. 그러던 중, 본사에서 내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일단 한 달만 베트남에 가서 현지 업무를 파악하고, 직원들과 친해진 후 돌아와 정식 파견 절차를 밟자”는 것이었다.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인수를 마무리한 지금, 현지에서 더 깊이 알아보고 회사의 첫 출발을 바로잡고 싶었다. 한 달은 길지 않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20인치 캐리어 하나에 간단한 옷과 생활용품을 넣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짧은 출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곧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빠르게 끝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뒤덮었고, 공항은 속속 문을 닫았다. 한국행 비행편은 취소되었고, 베트남 정부는 외국인의 출입국을 강하게 제한하기 시작했다.


차 없는 호치민의 야경

                                     



그렇게 나는 베트남에 고립되었다.



베트남에 도착한 후, 3일간 에어비앤비에 머물며 주변을 돌아다니고 회사에 나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 '격리'라는 단어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순식간에 나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베트남 정부의 지침에 따라 2주 동안 격리 생활을 해야 했고, 3일 동안 즐겼던 자유로움은 일순간 사라졌다.



낯선 공간, 낯선 음식, 그리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의 홀로 격리는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 중 하나로 남았다. 노트북 하나로 업무를 처리할 수는 있었지만, 좁은 책상과 폐쇄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다시 하늘길이 열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한 달 후 돌아오라는 본사의 계획은 이미 무산된 지 오래였다. 20인치 캐리어 하나로 떠난 출장이 어느새 기약 없는 장기 체류로 변해버린 것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일도 해결해야 했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구축해야 했지만, 무엇보다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을 준비해야 했다. '왜 나는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20인치 캐리어에 담기지 않은 수많은 것들—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이제야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베트남에서의 진짜 삶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