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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상호묵종

게리 거스틀 '뉴딜과 신자유주의'

by myungworry Jun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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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과 산자유주의'(아르테)는 제목만 보면 평소에 거의 들춰볼 일이 없는 책인데, 예상치 않게 재미있어서 정독했다. 저자 게리 거스틀은 케임브리지대 역사학과 폴 멜런 교수다.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라서 이 책이 내게 쉽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600쪽이 넘는 책을 내 마음대로 거칠게 간추리자면, 뉴딜은 민주당의 의제를 공화당이 이어받아서 가능했고, 신자유주의는 공화당의 의제를 민주당이 묵인해서 가능했다는 것. 정치질서, 지배질서는 이렇게 보수나 진보, 좌나 우, 공화당이나 민주당 등 한 세력의 추동에 의해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양 세력의 '묵종'으로 인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레이건 이래 중흥했던 신자유주의 질서가 파국을 맞았으며 이는 티 파티,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 등의 조짐과 함께 트럼프와 샌더스의 약진으로 증명된다는 것. 새 질서는 아직 자리잡지 않았으며, 거스틀은 이후의 전망에 대해선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몇몇 묘사와 분석은 매우 냉소적이면서 정확해서 인상적이다. 아래 몇 가지 발췌. 


그(레이건)는 지적으로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 하지만 그는 이러한 무지를 보완하는 힘이 있었는데, 세상 만물을 마음대로 꾸며내는, 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자신이 상상한 대로 이야기를 꾸며 내는 아주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레이건이 이룬 최고의 정치적 성과는 바로 백인우월주의와 종교적 경건주의에 초점을 둔 정치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뉴딜 국가를 적대하는 자신의 신자유주의적 시장 지향성과 화해시켜 냈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소련을 정말로 취약한 상태로 내몰 수만 있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 그리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큰정부라는 것도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 궁극적인 목표가 국가주의가 아니라 안전한 자유시장이 보장된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질서를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중국공산당의 권력만큼은 반드시 보존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지켜 내는 데에서는 야수와 같은 실용주의자였다. 고르바초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유토피아적 열망을 가진 마지막 사회주의자로서, 만약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구해낼 수 없다면 사회주의 자체가 구출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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