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하얼빈 ㅡ 시대에 역행하는 영웅의 일상
김훈, 하얼빈, 문학동네, 한국, 2022.
한때 청운의 꿈을 품기도 했거니와, 내 주제도 모르고 뭐라도 역사에 한 획 남길수 있지 않을까, 큰 착각에서 헤어나온지는 오래 되었다. 나는 늘 태산준령처럼 담대하고 듬직한 장부군자를 꿈꾸었지만, 실은 소심하고 나약하고 신경질적인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핍은 내가 일상을 유지하는 방식에서 전적으로 잘 드러나는데, 삶이 나를 겨누어 쫓는듯 버겁고 힘들때, 나는 그나마 일상을 버텨주던 독서며 훈련조차 마음이 산란스러워 손에 제대로 잡지 못한다. 일찍이 그 옛날 동진의 재상 사안은, 나라의 군대가 크게 이겼다는 편지를 받고도 함부로 기쁜 낯빛을 띄지 않았고, 오히려 주변 이들이 무슨 편지냐 재우쳐 물었다는데, 두던 바둑을 마저 다 두고 나서야 우리 장정들이 크게 이겼다는군, 한 마디 남겼다 했다. 하물며 큰일을 앞둔 옛 영웅들은 어떠셨을까? 충무공께서는 큰 전투로 큰 전쟁을 이겨나가는 바쁜 와중에도 근면히 일상을 일기로 남기셨는데, 그 일기에는 전략을 짜고, 병졸들을 먹이며, 왕의 질투에 괴로워하고, 동료 장수의 졸전에 분노하며, 큰 뜻을 몰라주는 부하 장수들에게 짜증스러워하는, 직장인이면서 한 명의 무인이자, 아비, 아들, 사내로서의 모습이 입체적이면서 일관되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북촌 망냉이 총각 시절에 툭하면 취한 모습으로 자주 뵈던 어느 위대한 대중가수께서는, 반주 준비가 너무 늦어 공연 시간을 못 맞출 때가 되셨어도 저녁 잘 드시고, 반주가 준비될때까지 무반주로 먼저 노래하시며 관객들과 소통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하얼빈의 이야기는,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ITF태권도의 여섯 번째의 틀 이름도 중근, 이다. 작가는 모두가 아는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대신, 황태자 이은이 지내는 도쿄의.일상을 끌어와 소설의 시작을 연다. 한일합방 이후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 배를 불렸고, 이름뿐인 조선 황제의 아들이 문명국을 자처하는 일본의 궁으로 끌려와 허울좋은 유학 생활을 보내는 일도 당대의 순리에 맞아보였다. 탈아입구脫亞入歐 를 부르짖으며 만민평등과 학문의 중요성을 외치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러나 젊은 김옥균을 서생으로 받아주면서도 조선과 일본은 합병되어야 한다 생각했고, 메이지 천황의 명으로 서양을 순방하고 돌아온 이토 히로부미 역시 통감부의 우두머리로서, 조선을 속국으로 삼았으니, 이 또한 시대를 거스르지 않는듯해 보였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교회 밖의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명동성당의 뮈텔 주교와, 심정적으로는 젊은 안중근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역시 종교인으로서 적국의 수괴를 쏴죽이라 말할 수 없는 빌렘 신부 역시 시대에 순행하는 이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시대의 중심 속에서 안중근 의사만이 홀로 고요히, 침착하게 역행한다. 그는 황해도 산촌에서 강건한 신체와 사격술을 지녔고, 학식이 있었는데, 동학의 일부 무리들이 큰 뜻을 잊고 마을을 약탈하러 오자 기꺼이 쳐부수었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뜻까지
세운다. 서른살 젊은 나이에 그는 자신의 안위는 물론, 처자식을 생각치 않으셨고, 외국 한인 사회에서 빼앗은 백 루블의 돈으로 우덕순 의사와 함께 밥 먹고 옷 사입고 사진 찍으시며 거사 준비를 하셨는데, 이 때 그의 일상은 결국 스스로를 잠시 유지시킬 뿐이었으며, 스스로를 던져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안타깝지만, 의사께서 참으로 큰일을 하셨어도 그 이후의 시대는 크게 역행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 장인께서 보내주신 생선 조리시는 어머니와 아내를 돕고 소은이를 보느라 아침 훈련을 하지 못했다. 주 5일, 훈련을 오랜만에 채웠지만, 연습량이 부족한듯하여 얼마 남지 않은 옥상도장에 있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내는 회사 일이 남았지만, 출장길에 가족 먹일 사과를 가득 사오느라 랩탑을 못 가져와 내 기기로 한동안 일을 했다. 나는 읽다만 김훈 선생의 책을 마저 읽으면서, 눈과 손으로는 소은이를 보면서, 입으로는 방금 읽은 문장들을 우물거렸는데, 그 과정이 의외로 좋아서 나는 두어 시간 그렇게 하였다. 아이가 더 커서 홀로 일상을 감내할 수 있다면, 나의 보잘것없는 공부와 무공의 시간들은 더 늘어날 것인데, 나는 일단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 부터 필사해볼 생각을 갖고 있다. 베껴쓰는.방식으로 읽는 문장들은, 온몸에 글자들을 끼얹고 새기는듯하여 마음까지 깊게 스민다. 마치 한바탕 훈련을 끝내고, 도복과 속옷을 넘어 혈관까지 땀에 젖은, 도장에서의 그런 기분이다.
나는 가녀리고 연약하며 보잘것없어서, 대단치 않은 직장에서의 일을 끝내고, 아이를 돌보고 나면, 책과 태권도로 무장하듯이 삶의 빈약함을 감출수밖에 없는 이다. 그조차도 별일 아닌 삶의 번잡스러움으로 흔들릴때 나는 주저앉거나 괴로워한다. 젊었을때는 에누리없이 술로 도망가, 한때 술은 내게 여유 이상의 무엇이었던 때도 있었으나, 이제 내게 술은, 아내의 허락 아래 가끔 즐기는 진정한 도락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부끄럽고 방탕하게 놓쳤던 내 옛 청춘이 생각날때 아주 가끔 저려서 손끝을 떤다. 글러브 끝을 입으로 묶고 헤비백을 치며 우울한 기억을 겨우 떨쳐내려고도 한다.
그러나 의사께서는, 훨씬 큰 뜻으로 큰일을 앞둔 상황에서도 일상에 흐트러짐이 없으셨으며, 사형집행일을 기다리시면서도, 글을 쓰고, 삶을 정리하셨다. 거사 전, 혹은 집행 전, 식사를 하시고 주무시면서, 혹은 하얼빈 기차역길 앞 주머니속 권총을 어루만지시면서, 또는 마지막을 앞두고 정신력을 드러낸다는 붓글씨를 쓰시면서, 나는 감히 나보다 젊으셨던 위인의 속마음이 어떠셨을지 짐작조차 할수없다. 나는 이제서야 소란스러운 키즈까페 한 구석에서, 일상의 무게를 담담히 보내는 영웅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