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게 일인데

언제부턴가 노트북 화면의 글씨가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또렷하기만 했던 글씨가 흐릿하게 보여 자꾸만 얼굴을 모니터 앞으로 가까이 가져가게 되었다. 

책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읽어도 눈이 침침해지는 느낌이 들어 보조 안경을 계속 찾게 됐다. 어릴 때부터 자신했던 눈의 시력이 드디어 나빠진 걸까. 노화가 이유일까. 노화가 시작될 때도 됐지. 하면서 지내다가 며칠 전 안경을 제대로 맞춰야겠다 싶어 정확한 시력을 측정하기 위해 동네 안과에 갔다. 

시력 검사를 받을 마음으로 가볍게 찾아간 안과에서 무거운 소식을 듣고 나왔다. 녹내장 검사를 했고 확실치 않으니 6개월 뒤 재검사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병명은 익숙하나 어떤 증상인지도 모르고 내게 찾아올 거라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녹내장. 정확한 정보를 병원에서 들었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하고 나와 결국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다.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지 않으면 실명에 이르는 질병이었다.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게 꿈이었던 내게 갑자기 녹내장이라니.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니고 녹내장일까. 당황스러우면서도 이 상황이 참 웃기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위대한 작가들처럼 책을 너무 많이 봐서 눈을 혹사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보면 눈이 멀 때까지 책을 읽은 줄......

내가 묻기 전에 의심되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었던, 게다가 6개월이라는 시간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안과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 근처 큰 병원으로 다시 예약을 했다. 아직 정확하게, 확실하게 진단받은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문제의 왼쪽 눈의 시신경이 오른쪽보다 약하게 보인다고 했다. 이유도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은 '그때 자세히 물어볼걸!' 하는 후회가 되지만 그전에 의사가 두려움에 떨 환자에게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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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가 안과 예약 시간이 되어 두 번째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 검사. 그리고 선생님을 마주했는데 처음 갔던 안과에서와 똑같은 대답.  '기본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본인이었다면 여기서 녹내장 검사를 추가로 해보라 권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환자분은 녹내장이 걱정되어 오신 거니 추가 검사를 더 받아보자'. 기본 검사로는 초기 녹내장을 잡아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걸 안 순간 처음 간 안과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이번에 초기 녹내장 진단을 받게 된다면 그 선생님이 의심해 주신 덕분이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참...)

다시 추가적인 검사 하나를 더 받았다. 검사 결과는 또 다른 검사 하나를 더 받아야 한다는 결과. 나의 시신경 모양이 해당 검사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는 거였다. 사람마다 시신경이 다 달라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새로운 병원에 오니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네, 생각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검사까지 해봐야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한 번 겪었던 일이라 그런지 이번엔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이미 다 해봤던 검사이기도 하고. 궁금한 게 더 있냐고 하기에 야무지게 이것저것 막 물어봤다. 결국 중요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지만......

약간 황당했던 건 내 시력. 첫 병원에서는 녹내장이라는 단어에 혼비백산해 정작 시력도 물어보지 못한 채 병원을 나왔는데 이번 검사 후 물어보니 1.0 이상이라고. 눈이 나빠졌다고 느낀 건 노화 때문일까 아님 밝혀지지 않은 원인 때문일까. 그건 내일이면 알 수 있겠지, 있었으면. 

병원에 다녀온 이후 눈 건강에 꽤 신경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확 줄었고 창밖의 초록초록한 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동생에게도 잔소리를 퍼부었다. 스마트폰 오래 하지 마라, 어두운 곳에서 스마트폰 보지 마라, 스트레칭해라, 창밖을 봐라. 

당연하게 여겼던 눈앞의 모든 풍경이 감사해지는 하루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내 소중한 눈, 열심히 챙겨야지.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눈 건강 잘 챙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