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조연출이 되다
기업 홍보 영상을 만들던 작은 프로덕션에서 1년 반.
테이프를 나르고 편집기를 닦으며 바닥부터 구르던 나는 어느새 ‘즉시 전력감’ 조연출이 되어 있었다.
촬영, 편집도 기본은 할 줄 알고 방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몸으로 익혔다.
이제는 1년 전처럼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수준은 넘어서 있었다.
조연출을 뽑는 몇 군데 방송 외주 프로덕션에 이력서를 넣었더니 얼굴 한번 보자는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운 좋게도 KBS 본사의 조연출로 채용될 수 있었다.
부서는 시사교양국의 [KBS 스페셜] 팀.
비록 정규직 PD는 아니고 계약직 조연출이었지만, 그래도 ‘KBS 본사’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남달랐다.
게다가 다큐멘터리라니.
그 시절의 나는 예능보다 교양이 더 '있어 보인다'고 믿었다.
깔깔대는 웃음보다, 진중한 탐구가 더 'PD 답다'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후에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지만.
“그래, 여기서 일도 배우고 공부도 하면서 가을 신입사원 공채를 준비하자!”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프로그램은 제목부터 압도적이었다.
[서울대의 나라]
간판 제일주의, 학벌 지상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서울대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진짜 교육개혁을 묻는 다큐멘터리였다.
크으~ 말만 들어도 멋지지 않은가?
학연 만능주의를 타파하고 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니!
가슴이 뻐근했다.
제작 현장은 치열했다.
담당 PD는 매일 교수, 교사, 학부모, 학생을 인터뷰했고 교육 서적 수십 권을 책상에 쌓아두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저렇게 공부해야 방송을 만들 수 있는 거구나.”
그 열정이 놀라웠다.
특히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일명 ‘기숙사 고등학교’를 취재할 때 일이다.
기숙사 고등학교는 학생들을 학교에서 먹이고 재우면서 가르친다.
군대식으로 아침저녁 점호를 하고,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는 학교였다. 아마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섭외 과정에서는 “교육 관련 다큐입니다”라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뭔가 싸~한 느낌이 있었던 것인지 해당 고등학교의 교장은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러자 담당 PD는 전화로 교장과 언성을 높여가면서 싸웠다.
“아니, 왜 취재를 거부하십니까?
우리나라 교육이 바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사명감이 묻어 있었다. 뭔가 세상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당연히 취재는 불발됐지만, 당시 그 모습은 내겐 대단히 멋져 보였다.
“꼭 공채 합격해서 나도 저런 PD가 되어야지!”
4개월간 정말로 다양한 교육 현장을 누볐고, 약 2주 정도 편집실에서 먹고 자는 과정을 거친 후에 드디어 최종 완성 테이프를 주조정실에 전달할 수 있었다.
첫 프로그램을 완주한 그날, 나는 TV로 내 방송을 보면서 ‘입봉’의 꿈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입봉은 PD가 자신의 이름으로 첫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을 뜻한다.
“언젠가 내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정받아 다른 PD와 일하기 전에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담당 PD에게 물어봤다.
“PD님,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뭔데?”
“PD님은 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나?
.
.
.
나는 서울대 나왔지.”
“아..”
방송국에는 SKY 출신들이 꽤 많다.
예나 지금이나..
뭐..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