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신입사원 공채 도전기
[파격]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MBC 신입사원 작문시험의 주제어는 '파격'이었다.
단순히 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과 도전하는 용기,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필요한 균형 감각등을 동시에 논하라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겠지.
그런 훌륭한(?) 의도에 걸맞지 않게 나는 너무나도 얼척없는 글을 써서 냈다.
"파격 세일!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인재입니다!"
내 글의 첫 문장이었다.
그럴싸한 논리 대신, 나는 자기 PR로 밀어붙였다.
‘내가 바로 파격 그 자체다!’ 이런 식으로.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그런 글을 썼던 걸까.
아마도 “이것도 일종의 파격이겠지?” 하는, 지나가던 개도 웃을 수준의 억지를 부렸던 것 같다.
결과는?
당연히 보기 좋게 광탈.
"크크크. 나도 글 잘 못쓰지만 그건 정말 아닌 거 같아요"
시험을 마치고 여의도 고등학교 교실을 나오던 길,
같이 시험 본 조연출 동기가 배를 잡고 웃었다. (참내, 자기도 떨어진 주제에.. )
"그나저나 큰일이네. 다시 또 1년 기다려야 하나.."
"조연출을 계속하면서 준비할 거예요? 그냥 일을 그만두고 공부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한참 방송국 문을 두드리던 2000년대 초반.
방송국의 신입사원 공채 전형절차는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방송 3사의 공채는 1년에 딱 한 번뿐이었고 ‘언론고시’라 불릴 만큼 난이도는 살벌했다. 교양, 상식, 논술, 작문, 그리고 실무면접까지.
매년 수백 대 1의 경쟁률 속에서 합격자는 전설처럼 회자됐다.
나는 그 전설을 3년 동안 쫓았다.
딱 한 번, 최종 면접까지 간 게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그런 작문 실력으로 거기까지 간 것도 기적이다.
“논술이 너무 어려워요. 상식은 외우면 되는데, 글은 진짜 안 돼요.”
"이제 포기해야 하나 싶어요"
그 시절 함께 공채를 준비하던 동기들은 모두 20대 중, 후반.
다들 ‘언젠가 인하우스 PD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텼다.
‘인하우스 PD’는 방송국의 정규직 PD를 뜻한다. 우리에게 이 단어는 마치 ‘성공’의 다른 이름과도 같았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조연출 일을 하며 공채를 준비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미션이었다.
촬영, 편집하느라 밤새우기 일쑤인데, 시험공부를 언제 한단 말인가.
뭐, 사실은 반은 내려놓고 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야지.
그 와중에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밖에 나가서 외주 PD 하면 진짜 힘들대. 일도 많고, 환경도 열악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박봉이래"
"그것도 그거지만, 맨날 외주 PD들 방송국 PD들한테 혼나던데. 난 그게 제일 힘들 거 같아"
"그치. 갑을 관계가 확실하니까.."
안타깝게도.
눈은 높아졌지만, 실력은 그대로였다.
특히 ‘글쓰기’는 PD의 기본 중 기본이었지만, 우린 읽지도, 쓰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처럼 ‘파격 세일’ 같은 괴문장을 써내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어쨌든.
벌써 3년째 공채 낙방.
결단의 시간이 왔다.
이제 인하우스니 외주니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조연출 생활만 2년 반, 승진도 미래도 없는 자리였다.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만두거나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방송국 PD는 포기하자"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은 후련했다.
‘파격’이란 결국,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한 발 비켜서는 용기가 아니던가.
같이 방송국에서 일했던 8명의 동기 중에서 회사를 박차고 외주 PD를 선택한 건 내가 유일했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선택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파격적인 합격 답안'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