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 아버지가 남겨놓은 땅이 있다고요?”
“네, 부친께서 갑작스레 사망하셨고,
법적인 상속자가 아드님이시니 절차에 따라 유산을 상속받게 되실 겁니다.”
수화기 너머 변호사가 하는 말이 꿈처럼 들렸다.
“땅값이 얼만데요?”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나중 문제다.
“음.. 지금 공시지가로는 한 10억 정도 되네요.”
“...”
전화를 끊고 만화처럼 볼을 꼬집어 봤다.
꿈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내가 사실은 산부인과에서 실수로 뒤바뀐 재벌집의 아들이라거나,
혹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둔 막대한 재산이 있었다거나,
뭐.. 이런..
그야말로 너무나 뻔~한 삼류 드라마 같은 설정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진!짜! 였다.
2.
“와~ 이거 보이스 피싱 아니냐?”
“야 이 개자식아, 배 아픈 걸 그렇게 티 내야겠냐? 헛소리하지 말고 마셔! 내가 쏠 테니까.”
“흐흐흐, 우리 같은 막장 인생에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우리? 지금 우리라고 하셨어요? 이 새끼 웃기네~ 왜 우리야! 임마! 내 돈이지 새꺄!!”
“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같은 보육원 출신끼리! 마! 우리는 형제아이가, 형제!”
“흐흐흐, 일단 마셔 새꺄, 돈을 어떻게 쓸지는 고민 좀 해볼라니까.”
“그래 먹자! 축하한다!! 짠~ 해”
쨍~~
밸런타인 21년산을 채운 글라스 두 개가 대리석 테이블 위에서 깨질 듯이 부딪혔다.
동석은 오늘 여기 룸살롱 술을 전부 퍼마셔도 취할 것 같지 않았다.
마주 앉은 보육원 부랄친구 형우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나저나 너 버리고 간 너네 꼰대가 진짜 마지막에 크게 한번 도와주시는구만~”
“크~~ 뭐 그런 셈이지. 흐흐흐”
난봉꾼이었던 꼰대가 어떻게 그런 큰돈을 가지게 됐는지 동석은 잠깐 궁금해졌지만
뭐 그런 게 무슨 중요한 문제겠냐 싶었다.
동석은 입술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웨이터를 불렀다.
“어이~ 여기 아가씨 들여보내~!”
3.
아버지는 바람둥이에 난봉꾼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술병을 끼고 살았고, 틈만 나면 엄마를 두들겨 팼다.
그 와중에 허우대는 또 멀쩡해서 술집 여자들과도 숱한 염문을 뿌렸다.
한 번은 엄마랑 내가 없는 사이 안방에서 술집년을 껴안고 있다가 우리에게 걸린 적도 있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갔는데 사실 그때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었지 싶다.
아마 내가 밥 정도는 혼자 차려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게 아니었을까? 여하튼.
가뜩이나 외박을 밥 먹듯이 하던 꼰대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에서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었고,
급기야 계절이 바뀌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뜸해졌다.
어린 나는 멀쩡한 아버지가 있는데도 고모 손에 이끌려 보육원에 맡겨졌다.
그리고 지금은?
38살의 나이에 도박 빚만 3억이 넘는다.
(능력도 없는 나 같은 놈에게 사채꾼들은 뭘 믿고 이렇게 돈을 빌려준 걸까? 뭐 사실 절반 이상이 이자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빌린 돈에 사람 두들겨 패서 물어줘야 할 합의금까지..
어찌 보면 보육원에 맡겨졌을 때부터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도저히 출구가 안 보이는 막장 인생이었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10억은 정말 큰돈이다.
돈을 모조리 갚고도 얼추 5억이 넘게 남는다.
5억이면..
크크크
술에 만땅 취했는데도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4.
다음 날
“띠리리~ 띠리리리~”
스마트폰 액정을 보니 지난주 연락 왔던 변호사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저희도 상속문제를 처리하다가 이제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저 말고도 상속자가 한 명 더 있다는 거예요?”
“네네, 아버님께서 이혼 후에 재혼을 하셨고, 그 사이에 자녀가 한 분 계세요”
아 시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럼, 유산을 반땅 하나요?”
“아... 네 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젠장.
10억이 5억이 돼버렸다.
- 2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