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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대머리가 되었다. 3부 End

by 채PD

1.

ID_ 궁금하면 500원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예상대로 반짝 민머리였다.

그는 군대 이등병 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서 전역할 때는 거의 민머리 수준이 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당시에 계급장을 떼고 있으면 연대장이나 주임원사로 오해하는 병사들이 많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하튼. 병민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병민은 그의 사연을 좀 들어주는 척하다가 못 참고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말씀하신 [훌렁살] 이라는 게 뭐죠?"


"아.. 그렇죠. 그 이야기를 해야지."


"훌렁살은 쉽게 말해서 저주예요, 무당이 살을 날린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하죠"


"살..을 날려..요? 훌렁 벗겨지라고?.."


"겪어봐서 아시겠지만 대머리나 특히 탈모인들은 아픔이 많아요,

머리숱이 없다는 건 외모적으로 굉장히 불리하기도 하고, 그만큼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죠"


"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뭐냐면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이나 놀림이에요,

저희 탈다모에서는 타인에게 비웃음이나 수모를 겪은 탈모인들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볼 수 있죠"


병민도 탈다모에서 그런 에피소드를 여러 개 읽은 기억이 났다.

사람들 앞에서 실수로 가발이 벗겨져 웃음거리가 됐다거나,

소개팅 날 비를 맞고 머리의 흑채가 검은 물로 뚝뚝 떨어졌다든가 하는, 웃픈 사연들이 꽤나 많았다.


"여하튼 탈모인들 중에는 무속인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자신과 또 다른 탈모인들이 겪은 수모와 모욕감을 모으고 모아서 살을 날린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


"그리고 누군가 그 살을 맞으면 머리털이 훌렁 사라져 버리는 거죠~"


"그.. 그런데 그게 왜 나한테.."


"혹시.. 탈모인에게 어떤 수모를 준 적이 없나요?"


"... 아..."


있었다.

병민은 고교 동창 경남과 술자리에서 다투다가 홧김에 경남의 뒤통수를 세게 갈겼는데

그때 그만 경남의 가발이 훌렁 벗겨져 버렸다.

병민은 경남이 가발을 썼는지 전혀 몰랐으니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자리에 경남과 썸을 타던 여자도 있었다는 것!

결국 경남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술자리를 뒤엎었고, 병민에게는 침을 뱉고 가버렸다.

물론 병민은 그날 이후로 경남을 볼 수 없었다.


"아.. 그날 경남이 그 녀석이 저를 엄청나게 무시했거든요.

가뜩이나 취업도 못 하고 있어서 스트레스받는데 그 녀석은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얼마나 뻐기던지.. "


"그래도 큰 실수를 했네요..

아마도 그 사건이 훌렁살을 맞게 된 결정타 아니었을까요?"


"그.. 그럼 그분.. 그 무속인분은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습니까?

무슨 치료 방법, 아니 저주를 푸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듣기로는 그분이 살을 날리고 풀어주고 하는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훌렁살은 그저 주술 같은 거라서 살이 알아서 타겟을 정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주가 풀리는 방법이 있을지는.."


"그.. 그럼 저처럼 훌렁살을 맞은 분이 또 있나요?"


"있다고 소문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가 전부예요"


2.

그 이후로 [ID_궁금하면 500원] 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지만 더 이상의 소득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훌렁살의 저주가 풀리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없었다..


"하.. 나에게 이런 저주가 걸리다니.."


방구석에 틀어박혀 없는 머리를 쥐어짜는 병민의 볼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한참을 꺼이꺼이 목놓아 울던 병민.

눈물을 한 바가지는 족히 흘린 후, 병민은 카톡으로 경남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경남아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너의 고통을 이해하고.. 나도 같은 처지..

불라불라.. 아무튼 내가 죽일 놈이다.. 불라불라... 용서해다오.."


그렇게 병민은 진심으로 사죄의 메시지를 보냈다.

머리를 때리고 번(?) 돈 108만 원도 함께..


3.

깊게 잠이 든 병민.

병민의 얼굴은 깊은 후회와 참회의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반짝이는 정수리에는 한 올의 튼튼하고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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