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안 들어왔는데요

방송은 재미로 해도, 돈은 재미로 받으면 안 된다

“돈 못 받은 게 얼마나 되는데?”

“한 7~8천 정도 되죠. 저 말고도 6~7명 더 있고요.”

"칠. 팔. 천?"

"담당 공무원이 놀라더라고요, 이렇게 큰돈 못 받은 경우는 처음 봤다고"

그럴 만하다.

보통 체불임금 신고는 ‘짤짤한 돈’이다. 그런데 이 정도면 거의 고급차 한 대 값이다.

얼마 전 외주 제작사에서 일하는 후배가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후배는 전 직장에서 한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받지 못한 돈이 그 금액이라며 소송을 준비 중이었다.

“아니, 돈을 못 받으면 바로 나와야지. 왜 거기서 1년 가까이 일을 해주고 있어?”

충고인지 타박인지 모를 말을 던지자, 후배가 말했다.

“회사가 망하면 아예 못 받잖아요. 프로그램을 뭐라도 살려놔야 돈을 받죠.”

이게 외주 프로덕션의 현실이다.

프로그램 한두 개로 먹고사는 제작사들이 널렸다.

방송사는 제작비를 미루지 않지만, 프로그램은 아무 경고 없이 종영될 수 있다.

그러면 작은 제작사는 바로 비틀거린다.

그 비틀거림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제작비, 장비 대금, 급여 순으로 타격이 오고,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는 건 늘 ‘사람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방송계에서 임금체불은 흔하진 않지만, 나쁘게 간간히 등장하는 단골손님 같은 존재다.

“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고?” 싶은 사건은 꾸준히 들린다.

나도 15년 전, 똑같은 경험을 했다.
작은 외주 프로덕션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던 때였다.

회사는 두 개의 방송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나는 여행팀, 옆 팀은 퀴즈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세 번째 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대표님, 월급이 안 들어왔는데요.”

“회사가 우선적으로 정산해야 할 게 있어서 그래.
며칠만 기다려. 세세하게 말하기엔 사정이 좀 있다.”

뭔 헛소리야. 복잡한 건 회사 사정이 아니라 내 통장 잔고라고.

그리고.. 이 양반 왜 이렇게 당당해?!

“대표님, 이번 주 안에 입금 안 되면 저 바로 그만둡니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말은 침착했지만, 속은 이미 캐리어 끌고 문밖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부터 다른 프로그램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며칠 뒤, 다행히(?) 급여는 그 주에 입금됐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떠난 뒤였다. 그 달의 방송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회사를 뛰쳐나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내 월급은 ‘가장 빨리’ 들어간 축이었다.
다른 팀 PD들은 두세 달 밀렸고, 옆팀 퀴즈 프로그램 팀은 무려 6개월이 밀려 있었다.

그 말은 곧, “나간다고 하는 사람에게만 급하게 돈을 꽂아주고 있었다”는 뜻이다.

크.. 이거야말로 어디서도 배우지 못할, 살아 있는 인생 수업이었다.

“야, 나도 돈 못 받을 뻔했어. 페이 한 번이라도 늦어지면 바로 나와야 돼!”

내가 진심으로 조언했더니, 후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도 그랬어야 했는데..”

후배가 말한 회사는 지금 폐업했고, 현실적으로 밀린 임금을 받을 기회는 요원해졌다.

비싼 인생 수업료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방송계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이 업계는 회사 규모가 ‘작아서 위험한 게 아니라’, 작은 회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판 자체가 위험한 거다.

후배는 지금 꽤 큰 제작사 본부장으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 큰 제작사도 요즘 일이 없다며 걱정이 많다고 한다.

요즘 방송은 큰 회사도 불안하고, 작은 회사도 불안하다.

플랫폼은 많아졌는데, 예산은 쪼그라들었다.

프리랜서 PD들은 늘 여행 짐을 싸는 사람 같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프리랜서 PD는 하고 싶은 일을 골라서 할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가 있는 대신 늘 고용의 불안도 함께 지고 산다.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 후배 PD 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아무리 방송이 좋아도.. 돈 안 주면 뛰쳐나와!”

방송은 재미로 해도, 월급은 재미로 받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