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문은 틀리지 않았다

내일을 아는 자의 첫선택

by 채PD

<코스피 -6.4%>


신문 1면에 적혀 있던 그 숫자. ‘검은 월요일’이라는 문장.
장난처럼 보이던 그 글자들이..


전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월요일 오후 편의점 알바를 가기 위해 마을버스에 올라탔을 때,
뒷자리에 앉은 중년 남자들은 폭락한 증시에 깊은 탄식을 내쉬고 있었다.


“나라 망한 거 아니냐?”

“와.. 어떻게 6%가 넘게 빠져?”

"종합지수가 그런 거지, 내꺼는 15%가 넘게 빠졌어.”


나는 손에 땀이 차는 걸 느꼈다. 신문의 예언이. 아니, 보도가 틀림없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1.

내일 신문은 일요일에만 오는 게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매일 아침 문 앞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신문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다.


8/4 (화) 강서구 아파트 단지 화재 → SNS 실시간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

8/5 (수) 한강대교 추돌사고로 정체 → 라디오 교통정보 그대로 송출.

8/6 (목) 유명 연예인 스캔들 → 저녁 메인 뉴스 기사.

8/7 (금) ○○지하철 고장, 출근길 운행 지연 → 출근길 사람들의 욕설이 SNS 타임라인을 뒤덮음.


5일 연속. 단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코스피 지수, 개별 사건, 자잘한 단신까지 모두.


이쯤 되니.. 무서웠다.


‘이게 어디까지 맞는 거지?’
‘내일 신문은.. 대체 뭐지?’
‘왜 하필 나한테 온 건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신문을 넘기는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공포는 오래가지 않았다. 딱 금요일 아침까지였다.

왜냐하면.


신문 17면 구석에 로또 번호가 인쇄돼 있었기 때문이다.


2.

"그.. 그렇지 그렇지.. 이게 진짜 미래를 보여주는 거라면.."


누가 뒤통수를 망치로 내려친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섯 개의 숫자를 보는 순간 지금까지 느꼈던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신문을 누가, 왜 보냈는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가슴이 빨리 뛰었다. 손끝이 간질거렸다. 숨이 가빠졌다.

나는 마치 튕겨진 용수철처럼 반지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헉헉"


슬리퍼 차림으로 복권 판매점까지 순식간에 달려간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한 손에는 신문을 꼭 쥐고.


복권 OMR카드에 신문에 적힌 여섯 자리 숫자를 하나하나 옮겨 적었다.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확인에 확인.

그저 숫자를 옮겨 적는 것뿐인데도 손은 태풍에 흔들리는 가로수처럼 흔들렸다.


“한 회차만 하시게요?" 점원이 물었다.


"네. 딱 한 회만요. 여기 천 원이요.”


점주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날 밤, TV 속 로또 추첨 생방송을 보며 나는 생애 가장 긴 10분을 보냈다.


“7번.” ‘맞아.’

“15번.” ‘맞아.’

“44번.” ‘맞아.’


여섯 번째 숫자가 발표되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모두 일치.


화면이 흐릿해지고, 소리가 멀어지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천 원짜리 종이 한 장이 18억이 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신문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3.

공무원 시험은 때려치우기로 했다.

별 고민도 필요 없었다.


“그래, 그만하자. 5년이면 충분히 했다.”


머릿속에서 내 인생의 플랜을 다시 짜봤다.

차는 소박하게 비엠더블유 5시리즈로 하나 사자. 강서 쪽에 아파트 하나 사고.


"엇.. 머야. 그럼 끝이네?"


한번 더 로또를 사야 하나? 아니야, 아니야. 로또 일등 같은 게 연속으로 당첨되면 사람들 시선을 끌게 된다. 괜히 언론 같은 데서도 주목할지도 모르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로또가 아니더라도 돈 버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다."


단 하루를 미리 알 수 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다.


나는 이제 집과 차를 사고.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알바를 하던 편의점 파라솔 그늘 아래 앉아 아이스크림 빵빠레를 빨면서 행복한 상상에 잠겼다.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는 미래를 아는 능력자다.


“내일 신문이 있다면. 이제 진짜 못할 게 없지.”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1화반지하에 배달된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