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노트를 채우는 완성의 경험
나는 아침마다 세 페이지씩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10분 명상을 마친 후 곧바로 꺼내 드는 것은 밥숟가락이 아닌 아침 일기장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저서 '아티스트 웨이'에 영감을 받아 시작하게 된 모닝 페이지는 적절한 크기(A5 내외)의 노트에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써내려 가는 일이다. 말이 논리적으로 닿지 않아도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은 모두 적을 수 있다. 단, 자신이 쓴 글을 다시 돌아가서 볼 수는 없다. 다소 엉뚱한 나의 아침 루틴인 모닝 페이지와 함께 벌써 1년가량을 지나왔다. 그간 쌓인 노트가 다섯 권에 달한다.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을 모닝 페이지를 쓰는 의미는 무엇인지 종종 떠올려본다. 굳이 저녁이 아닌 아침에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고, 내가 쓴 글을 돌아가서 보는 것은 왜 안 되는 걸까?
줄리아 카메론의 말을 빌리자면, 모닝 페이지는 '자신의 결과물을 판단하지 않고 써내려 가는 방법'을 익히는 일이다. 완벽주의가 표준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도전하기를 두려워하고, 한 발만 내딛고서 자신이 빚어낸 결과에 대해 판단하기 십상이다. 결과물에 대한 실망은 '나는 재능이 없어'와 같은 사고로 이어져 자신을 쉽게 재단하고 깎아내리게 된다. 그러나 모닝 페이지를 쓸 때만큼은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쓴 글을 돌아가서 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친구나 가족은 물론, 나 자신도 절대 이전의 글을 볼 수 없다. 그저 매 페이지를 넘기며 써내리는 것이 모닝 페이지의 모든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도 긍정적으로 발휘된다.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진행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결과를 완성해냈다면 모든 이가 결승선에 닿은 것이다. 이렇듯 모닝 페이지를 쓴다는 것은 완성의 경험을 매일 아침 해내는 것과 같다. 자신의 아웃풋에 대해 판단할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묵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글쓰기다. 즉, 의식의 흐름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스스로의 표현을 '허용'하는 일이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서는 이전 한 페이지를 완성해야 한다. 사사로운 고민, 잡다하게 늘어지는 생각들이나 야망으로 불타는 꿈 등, 머릿속에 맴도는 모든 것을 쓰면 된다. 정 쓸 거리가 생각나지 않으면 애국가 가사를 써보는 것도 좋다. 어제 산책하다 본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좋다. 이렇게 한 페이지를 채웠다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한 장을 넘기자마자 텅 빈 공간이 눈 앞에 펼쳐져있다. 공백을 바라보는 홀가분한 경험은 지나간 페이지를 완전히 과거의 일로 만들어버린다. 그 홀가분함 속에서 또다시 하얀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곧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의 생각들을 묵묵히 써 내려가 보자. 세 페이지를 완성했다면 노트를 덮는다.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그리고 당신은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벌써 무언가를 완성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두려움은 사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뒤로하고 앞을 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다. 만일 최근들어 복잡한 생각들로 심란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정돈되고 말끔한 기분이 드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마구잡이로 쓰는 세 페이지의 아침 일기가 그 첫 발을 딛도록 도와줄 수 있다. 어떻게든 채워지는 세 페이지의 경험으로 당신은 처음 노트 한 권을 모두 써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항상 앞장만 찢어서 방치해두었던 노트를 모닝 페이지 노트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아마도 그 모든 페이지가 애국가로 채워져 있더라도 뿌듯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