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예방접종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일기

by 이진

 돌연 대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오랫동안 방황하던 때였다. 세상에 대한 의심과 불만으로 밤잠을 지새우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꼭 눈물이 났다. '이렇게 오늘도 무감한 하루를 보냈구나'. 눈을 감고 잠을 자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내일도 오늘 같은 하루가 된다면 잠에 들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무력하게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다가 우연히 방송인 정선희 씨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강연을 보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디자인하라'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정선희 씨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세 줄의 일기 쓰기를 제안했다. 오늘 중에 가장 안 좋았던 일 하나, 가장 좋았던 일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일 할 일을 적는 방법이었다. 그가 설명하기를, 안 좋았던 일을 쓰고 난 후 좋았던 일을 쓰면 하루 전체가 좋은 일로 마무리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하루를 매듭짓지 못하고 밤을 서성이던 나에게 당장 필요한 활동이었다. 나는 정선희씨의 하루 세 줄 일기 개념을 차용하여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다.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한 일을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며 나는 빠른 속도로 일상의 생기를 되찾았다. 더 이상 침대 위에서 눈물짓는 일도 없었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저녁 다섯 가지씩 감사한 일을 기록한다. 정말 간단하게 한 줄씩만 쓴다. 쓰는 건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효과는 대단히 긍정적이다. 어느 누구라도 매일 좋은 일도 생기고 나쁜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중 대부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 잊혀진다. 감사일기의 기능은 나에게 생긴 일 중에서 좋았던 일에만 집중하도록 돕는 것이다. 사사로운 일은 잊히도록 그대로 두고, 기분 좋은 일을 기억해내는 습관을 기르는 활동이다.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다시 읽고 싶어 지는 때가 온다. 주로 가끔 기분이 괜히 울적해질 때다. 이때가 바로 감사일기가 진가를 발휘하는 때다. 이전의 써놓은 감사한 일들을 읽으며 기록에 감응하다 보면 어떤 기분도 다시 쉽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일상 속에 이렇게나 감사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벅차오르기도 한다. 일시적인 감정의 늪에 빠져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 나의 마음을 돌아봐 주어야 한다. 쉽게 바뀌는 기분이라면 그때그때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감사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불쾌의 경험들을 부드럽게 건너가기 위한 꾸준한 예방접종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일지라도, 아무리 무력한 하루였을지라도 하루 24시간 중 무언가 감사할 일은 꼭 있기 마련이다.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보아도 주변에는 정말 감사할 일이 많다. 구체적이지 않아도 그렇다. 첫날 감사일기에 나는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썼다. 산책을 하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적었다. 어떨 땐 귀찮아서 휘갈겨 쓰더라도 감사할 일에 대해 쓴 것이니 의미가 있었다. 오늘부터 의식적으로 감사할 일을 찾아서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 불만 가득하던 세상이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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