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 Jan 23. 2024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1주 차 ─ ② 엇박의 매력

출처: 유튜브 채널 '재즈기자 Jazz Editor' <엘라 피츠제럴드 “재즈란 무엇인가”>


"엘라, 사람들에게 재즈가 뭐라고 설명해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한 번 해봐요."
"샵밥 두비두밥~"


    한 유튜버의 패러디로 유명해진 영상이 있습니다. 패러디의 원본은 세계적인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와 멜 토메의 스캣(Scat) 무대였습니다.

    스캣이란, 재즈에서 즉흥적으로 뜻이 없는 단어들을 모아서 가사 대신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스캣에는 아무런 악보나 규칙이 없습니다. 오로지 그 순간 느껴지는 대로 만드는 음악입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미리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었더라도, 가수는 현장 분위기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여 스캣을 변주할 수 있습니다.


    가수 선우정아 님은 콘서트에서 관객과 함께 스캣 무대를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선우정아 님의 '고양이'라는 곡에는 스캣 가사로 이루어진 파트가 있습니다. 단독 콘서트에서 그는 청중에게 마이크를 넘겨 자유롭게 스캣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합니다. 참여형 공연입니다. 관객이 마이크를 쥐자마자 공연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릅니다.


출처: 유튜브 '선우정아', <'고양이' 스캣 1:1 배틀>


    마이크를 넘겨받은 관객들은 부끄러워하기도, 숨겨왔던 끼를 발산해보기도 합니다. 진지한 모습으로 자기만의 리듬을 타거나, 원곡에 있는 스캣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변주해보기도 하지요. 마이크가 옮겨갈 때마다 곡의 분위기는 미세하게 전환됩니다. 비슷해 보여도 하나하나가 특별합니다. 관객들의 목소리 톤은 물론이고 스캣 가사도 독특하게 바뀌어 같은 음정과 멜로디인데도 모두 다른 음악처럼 들립니다.


   스캣은 엇쓰기를 하는 방법과 매우 흡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노트를 갖고 있지만, 그 위로 쓰이는 이야기들은 모두 다릅니다. 하나의 특별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엇쓰기는 스캣처럼 누구나 갖고 있는 고유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합니다.

    혹시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너무 평범해서 그런 고유성이나 개성 따위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개성은 본래 우리 모습, 그 자체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나와 같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나와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없지요. 우리 모두에게 '나'라는 존재는 유일무이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개성과 특별함이 아닐까요.



    엇박의 매력


    엇쓰기는 엇박과도 연결됩니다. 요즘 말로 그루브(groove)라고도 합니다. 엇박은 정박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스캣처럼, 경계와 규칙 없이 나만의 느낌을 타는 것이 엇박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나만의 느낌이 무엇인지 모호할지도 모릅니다. 이때 엇쓰기가 그 '느낌'을 찾는 좋은 도구가 되어줍니다. 나만의 리듬을 감각하는 도구로 우리는 엇쓰기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정박으로 올곧게 가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삐뚤빼뚤, 삐그덕거리며 나아가는 것은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엇나가는 것이 정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효과적인 지름길일지도 모릅니다.





  책『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소로는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명예와 부흥하는 산업사회를 뒤로하고 자연과 인생을 탐구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는 월든 호수 근처에 간소한 집을 지어 2년 2개월간 자급자족하였고 탐구 내용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행진할 용기였습니다.

    소로의 책은 출간된 19세기 당시에는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산업 사회라는 기회의 땅을 뒤로하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산다는 건 어느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테지요.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책『월든』은 고전의 지혜로 새롭게 떠오릅니다. 바로, 현대 미니멀리즘의 부상 덕분입니다. 이 책은 간소화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한 미니멀리즘의 정법서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법정스님도 생전 소로의 책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지내셨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강압 아래에 놓입니다. 졸업과 취업, 결혼과 은퇴까지 모든 길에 정방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모든 '정방향'은 대체로 재고가 필요한 허구의 명제입니다. 그것은 다만 수없이 펼쳐진 갈림길들 중 하나일 뿐이지요.

    소로는 하버드 졸업생임에도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인생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그 선택이 다른 누군가의 욕망에 기초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명품을 쇼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한국 명품 시장에는 '오픈 런'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매장이 열리기 전부터 사람들은 줄을 서서 물건을 사기 위해 기다립니다. 오픈 런 문화를 통해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가시화하게 되고, 명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매장 앞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만 답습하고 나의 욕구를 전혀 살피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건강하고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 우리는 나와 타인의 관점을 조화롭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 중요한 시점이 오면 우리는 무언가 색다른 길을 찾고 도모합니다. 졸업이든, 휴직이든, 이직에 대한 결심이든, 은퇴든, 우리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쉼표의 시간을 마주하지요.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일은 바로 '나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찾아보는 일이지요. 나에 대한 적극적 탐색을 우선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는 곳에 열정을 쏟으며 시간을 낭비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남들의 인정과 관심을 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인정욕구를 채우는 방법으로 쇼핑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쇼핑은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보지 않은 표면적 선택일 뿐입니다. 사도사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바로 내면의 갈증에 비롯됩니다. 그의 내면적 갈증은 결코 물건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외로움과 인정욕구를 알아채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뽐낼 온갖 물건을 사들일 것입니다.

 여기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식'입니다. 나에 대한 인식, 즉 나의 존재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며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엇쓰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면의 나로 들어가게 됩니다. 양파 껍질을 까듯이 한 겹 한 겹 마음을 덜어내다 보면, 그 중심에는 자기에 대한 소중한 정보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정말 양파와 같아서 삽시간에 눈시울을 붉힐 수 있습니다. 혹은 피부가 쓰리도록 아플지도 모릅니다. 노트 위로 솔직하고 명백하게 드러나는 속마음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변화의 여정에 서게 됩니다.

    변화의 여정은 결코 사회가 제시하는 정방향의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엇나가고 역행하며 굽이굽이 돌아갈 것입니다. 인생에 한 번쯤은 엇나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엇나간 길이 결국에는 여러분에게 무언의 통찰을 선사할 것입니다.

    엇쓰기 모임에서 우리는 더 이상 황새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정방향으로 날아가는 황새를 따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황새가 되고픈 내면의 갈증을 알아차리고 뱁새로서의 껍데기를 마주해 볼 것입니다. 즉 '자기 인식'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유'라는 인생의 덕목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진의 브런치 매거진 <엇쓰기 모임> 정주행 하기


프롤로그

─ 내 안의 엇, 하는 순간을 찾아 떠나는 글쓰기 모임


1주 차: 오리엔테이션

─ ① 엇쓰기가 뭐예요?

─ ②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현재 글)

─ ③ 지하 암반층에서 엇쓰기

─ ④ 엇쓰기, 어떻게 하는 건데?

─ ⑤ 나만의 넷플릭스에 접속하라

─ ⑥ 엄마 김치의 비밀

─ ⑦ 리쓴! 나의 일상 리듬

─ ⑧ 엇쓰기의 효능

─ ⑨ 자기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진 인스타그램 @leejinand

엇쓰기 모임 인스타그램 @eot_writing





매거진의 이전글 엇쓰기가 뭐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