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차 ─ ④ 엇쓰기 도구 첫 번째: 세 페이지 글쓰기
그렇다면 엇쓰기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엇쓰기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 페이지 글쓰기, 두 번째는 감사일기입니다. 감사일기는 4주 차에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 나누어보고, 첫 번째 방법인 세 페이지 글쓰기에 대해 먼저 낱낱이 알아보겠습니다.
세 페이지 글쓰기 방법은 말 그대로 노트에 세 페이지, 그러니까 한 장 반에 달하는 분량을 자유롭게 채우는 글쓰기 방법입니다. 여기서는 어떤 이야기도 허용됩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털어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노트의 크기는 A5 정도면 됩니다. A4용지의 반절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원한다면 다른 크기의 노트를 써도 좋습니다. 한두 장만 쓰다가 책꽂이에 내내 방치했던 노트라면 더 환영입니다. 어떤 노트를 쓰든지 간에 상관없이 세 페이지는 꼭 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 페이지 글쓰기가 아니겠지요. 이 세 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내면에 있는 수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 페이지 글쓰기 노트는 여러분에게 펼쳐질 신비로운 조합의 출생지가 될 것입니다.
엇쓰기 첫 번째 도구의 모태가 된 책이 있습니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입니다. 책『아티스트 웨이』는 삶에서 창조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과 제안을 건네는 창작 워크북입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제안 중 하나가 바로 세 페이지 분량의 글쓰기입니다. 카메론은 특별히 그것을 아침에 쓴다고 해서 '모닝 페이지'라 부릅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탐구하려는 욕망을 품었던 시기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났습니다. '나를 알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은 모닝 페이지, 즉 세 페이지 글쓰기 습관으로 어렵지 않게 충족되었습니다. 물론 하루하루는 비슷하게 느껴질지라도, 몇 개월 뒤에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꽤 생경한 기분이 듭니다. 배우고 성숙하고 이해하며 걸어온 길이 노트 위에서 지도처럼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책『아티스트 웨이』에 영감을 받아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신의 한 수라고 할 정도로 값진 일이기도 합니다. 그 무엇보다 '글쓰기' 그 자체의 열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세 페이지 글쓰기를 처음 시도했던 것은 약 7년 전입니다. 당시 저는 A4 이면지를 활용했는데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집에 남는 이면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금 단순하더라도, 첫 시도에는 나에게 가장 가깝고 접근하기 쉬운 도구들을 사용하면 좋습니다.
매일 아침 이면지 세 장을 꽉 채워 글을 썼습니다. 사실 초반 3년은 시행착오의 기간이었습니다. 종이가 노트보다 관리가 쉬우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을 꼬박 채운 종이는 관리가 어려워 집을 정리하던 중 모두 파기했습니다. 가끔은 그 종이들 안에 무슨 이야기들이 담겨있었을까, 궁금해져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수백 장에 달하던 종이 더미는 단지 스스로 충분히 이것저것 시도하고 경험했다는 의미로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이후 저는 노트를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종이에 비해 노트는 보관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노트는 커버가 있어서 종이보다 조금 더 오래 이야기들을 담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3년을 뺀 나머지 4년 동안 저는 약 열일곱 권의 노트를 채워 보관하고 있습니다. 꼭 그것을 다시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오랜 성장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모아두면 대견한 기분도 듭니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받아온 노트, 쓰다가 말아서 앞장을 마구 찢어둔 노트, 두꺼운 노트, 얇은 노트 구분 없이 이것저것 활용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정착한 노트가 하나 있는데요, 무인양품의 '단행본 노트'입니다. 무려 184장의 문고 노트입니다. 페이지로 계산하면 368페이지로 약 122일간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가격도 3천 원 내외로 저렴한 편입니다. 저는 2년 전부터는 이 노트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일 처음 엇쓰기를 시도한다면 얇은 스테이플러 제본 노트도 탁월한 선택입니다. 우선 얇아서 글을 쓰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180도로 펼치기 쉽고, 어디서든지 쉽게 구할 수도 있습니다. 문구류를 취급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스테이플러 제본 노트 하나쯤은 있으니까요. 스테이플러 노트가 취향이 아니라면 얇은 스프링이나 기본 문고 노트를 택해도 좋습니다.
세 페이지 글쓰기 노트를 고를 때 고려할 만한 요소 첫 번째는 접근성입니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데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노트의 얇기입니다. 얇은 노트일수록 글을 채우는 재미를 더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심자에게 단 한 가지 필요한 것은 가벼운 마음가짐입니다. '이 정도면 해볼 수 있겠는데' 싶은 정도의 가볍고 얇은 노트를 한 번 찾아보세요.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면 더욱 좋겠지요. 사실, 첫 노트는 새로 사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책장 어딘가에 한 권 정도는 꽂혀 있을 테니까요. 바로 그곳에서 여러분만의 은밀한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 내 안의 엇, 하는 순간을 찾아 떠나는 글쓰기 모임
1주 차: 오리엔테이션
─ ① 엇쓰기가 뭐예요?
─ ②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③ 지하 암반층에서 엇쓰기
─ ④ 엇쓰기, 어떻게 하는 건데? (현재 글)
─ ⑤ 나만의 넷플릭스에 접속하라
─ ⑥ 엄마 김치의 비밀
─ ⑦ 리쓴! 나의 일상 리듬
─ ⑧ 엇쓰기의 효능
─ ⑨ 자기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이진 인스타그램 @leejinand
엇쓰기 모임 인스타그램 @eot_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