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 Feb 13. 2024

나만의 넷플릭스에 접속하라

1주 차 ─ ⑤ 그리고, 한 가지 주의사항

밥을 먹으며 재미난 영상 한 편을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 말로 '밥 친구'라고도 하지요. 그런 날엔 오랜만에 OTT 서비스에 접속합니다. 넷플릭스, 티빙, 쿠팡플레이 등을 들어가 보면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찾아봐도 도통 보고 싶은 작품이 없습니다. 그런 날엔 포스터와 제목만 구경하다가 그만 준비한 밥이 다 식어버립니다. 고심해서 하나를 선택할 즈음에는 식사가 벌써 다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글쓰기 초심자에게는 이와 비슷한 일이 생겨납니다. 노트도 준비됐고 펜도 준비됐는데,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한 느낌입니다. 텅 빈 노트를 뚫어져라 본다고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나는 도저히 할 이야기가 없어'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하면서요. 내 안에서 표현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또다시 깊은 내면의 동굴로 들어가 버립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저할 때 인식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나만의 OTT 서비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하나의 채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상 드라마부터 로맨스, 코미디, 판타지, 어떤 날에는 누아르. 그중 어떤 장르라도 좋습니다. 혹은 다큐멘터리도 있습니다. 잔잔하게 이야기를 담는 다큐멘터리는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관객에게는 보편을 넘어선 새로운 시선이 됩니다.

    어떤 장르든 상관없이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세요. 그러니까 '나만의 넷플릭스'를 둘러보는 것입니다. 엇쓰기를 하는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그 모습을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관객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여러분만의 사적인 슬픔과 아픔도 표현되는 순간부터는 한 편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 사항


     엇쓰기를 하는 동안에는 어떤 이야기를 써도 좋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엇쓰기 노트의 내용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 가족은 물론이고 여러분 자신도 글을 다시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규칙인가 싶으시지요. 하지만 이런 주의 사항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완벽주의 레이더망이 있습니다. 완벽주의 레이더망은 모든 창작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게 무엇이든지 꼬집어 질타합니다. 마치 처음 그림을 그린 세 살 아이에게 대학 입시 미술의 퀄리티를 기대하는 것과 같지요.

    완벽주의 레이더망은 현대인의 고질적 습관입니다. 요즘에는 누구나 양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연결되면서 멋진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요. 보는 눈이 상향 평준화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은 분명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됩니다.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향 평준화된 작품과 나의 초창기 여정을 비교하는 마음이 들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리기도 합니다. 창작은 멋지게 펼쳐지는 결과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알아도, 우리가 보는 것은 오로지 화려한 한 장면이니까요.

    실은, 우당탕우당탕 나아가는 과정이 결국 수려한 작품 한 점의 실마리입니다. 그 외의 방법은 결단코 말하건대 없습니다. 그 실마리로 향하는 과정이 바로 부지런한 엇쓰기, 즉 세 페이지 글쓰기를 통해 실천되는 것입니다.

    엇쓰기를 할 때 자기 글을 다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완벽주의 레이더망을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함입니다. 맞춤법이 틀리고,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글자가 구불구불해도 괜찮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를 남겨두세요. 완벽주의 레이더망에 꼬집힌 요소들이 여러분의 용기 있는 창작 과정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세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창작물에 대한 탐닉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엇쓰기를 통해 매일 재생되는 영감을 풀어내는 과정에 돌입합니다. 이는 마치 근력운동과 같습니다. 창조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만일 과거의 창작물을 보고 또 보면서 그 안에 매료되어 빠져 버린다면 더 이상 창조력을 단련할 수 없겠지요. 이는 초기 창작자가 쉽게 빠지기 마련인 나르시시즘적인 습관입니다. 완벽주의 레이더망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도 방해 요소들은 곧 하나의 길로 연결됩니다. 과거의 창작물을 탐닉하며 매여있다 보면 결국엔 새롭게 쓰기를 주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작품에 대해 비관주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또 나르시시즘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은 겉모습은 달라 보이지만 똑같은 방해꾼들입니다. 이러한 고질적인 습관들이 우리의 순환적인 창조 에너지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저항이 밀려들더라도, 엇쓰기 노트에 쓴 글은 누구도 볼 수 없다는 규칙을 꼭 기억하세요. 방해꾼들이 흘깃대지 못하도록 문을 꼭 잠가둔 채로 여러분이 나아가는 여정을 한 번 믿어보세요.







이진의 브런치 매거진 <엇쓰기 모임> 정주행 하기


프롤로그

내 안의 엇, 하는 순간을 찾아 떠나는 글쓰기 모임


1주 차: 오리엔테이션

─ ① 엇쓰기가 뭐예요?

─ ②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③ 지하 암반층에서 엇쓰기

─ ④ 엇쓰기, 어떻게 하는 건데?

─ ⑤ 나만의 넷플릭스에 접속하라 (현재 글)

─ ⑥ 엄마 김치의 비밀

─ ⑦ 리쓴! 나의 일상 리듬

─ ⑧ 엇쓰기의 효능

─ ⑨ 자기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진 인스타그램 @leejinand

엇쓰기 모임 인스타그램 @eot_writing





                    

매거진의 이전글 엇쓰기, 어떻게 하는 건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