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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Feb 20. 2024

엄마 김치의 비밀

1주 차 ─ ⑥ 기술 이전에는 과정이 있다

저의 어머니는 김치를 아주 좋아하십니다. 김장철이 아니어도 배추김치, 물김치, 깍두기 할 것 없이 자주 담가 드십니다. 한 번 맛보면 밥 두 공기는 그냥 뚝딱할 정도로, 어쩜 매번 그렇게 간도 딱 맞게 하시는지 신기합니다. 맛있다고 감탄하며 엄지를 세우면 어머니는 고수의 향기를 품은 한마디를 던집니다.


"간도 안 봤는데."


    어떻게 엄마 김치는 '간도 안 봤는데' 그토록 맛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합니다. 엄마는 김치를 자주 담가봤기 때문입니다. 김치를 만들어 본 경험이 늘면 늘수록, 간 따위는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손에 익어버릴 테니까요.


출처: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채널, <단짠단짠 간장 비빔국수 레시피>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채널에는 몇 년째 사랑을 받는 간장 국수 레시피 영상이 있습니다. 조회수만 해도 600만이 훌쩍 넘도록 인기를 얻은 영상입니다. 영상 속에서 박막례 할머니는 간장 국수 레시피에 대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손녀딸인 유라 PD는 할머니께 묻습니다.


유라 PD: "숟가락을 안 쓰는데 어떻게 그렇게 맞춰?"
박막례 할머니: "그거야 내가 넣는 대로 맞추지. 숟가락으로 안 넣어도 더 정확해."


    요리를 잘 모르는 초보자에게 '넣는 대로 맞춘다'는 말처럼 막막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박막례 할머니에게 그만큼 표현하기 쉬운 문장도 없을 것입니다. 식당 운영 경력만 43년인 박막례 할머니는 식초 정도야 눈을 감고도 계량할 수 있을 테지요. 이는 경험으로 인한 노하우입니다.





기술 이전에는 과정이 있다


요리든, 글쓰기든, 기술을 흡수하기 이전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김치의 간을 뚝딱 맞추는 저의 어머니나, 간장 국수 소스를 마법처럼 계량하는 박막례 할머니의 모습에는 그들만의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노하우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충분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초심자들은 시작 지점에서부터 좌절감에 빠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글을 다른 베테랑 작가의 글과 비교하지 마세요. 자신의 과정에 더욱 몰입하세요. 우리가 주로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작가들은 이미 십여 년 이상, 혹은 몇십 년간 글쓰기를 해온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편집자나 출판사와 같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도움으로 더욱 멋지게 재탄생하기도 하지요. 작가로서의 기술과 노하우에 편집자의 영혼까지 깃들었으니 그 글은 초심자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그들의 작품과 나의 첫 시도를 비교하게 됩니다.


    비교에 휘청이는 마음을 다루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글을 갈고닦아온 실력자들이 초심자인 나를 보면 어떻게 느낄까, 심지어 은근히 속으로 질투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겁니다. 그것은 그들이 베테랑 작가로서 걸어온 여정이 무안해지는 일이지 않을까요. 마땅히 존중받을 만한 노력과 쏟아낸 애정의 척도가 초심자의 질투 하나로 상쇄되어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1학년을 바라보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학년은 3학년을 동경하고 그들만큼이나 학교에 익숙해지고 싶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 2학년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실력자를 바라보는 태도


나보다 더 유능해 보이는 누군가를 마주치면 부러움과 질투심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질투심 자체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입니다. 하지만 감정에 대응하는 방법을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안 그래도 실력으로 스스로를 연민하게 되는데, 빼꼼 얼굴을 내미는 쪼잔함까지 건강하게 소화하기란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지요. 저도 종종 그런 감정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마음을 다잡고 생각합니다. 실력 있는 이들이 흡수해서 낭창하게 누리는 결과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곳까지 닿기 위해 노력했을 과정을 떠올려보자고요.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실력자의 존재는 무조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질투와 부러움의 에너지를 배움과 성장의 동력으로 이끌 수 있다면요. 그들은 선지자로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 혹은 갈 수도 있는 길을 이미 걸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에 관해 그들이 경험한 바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내가 앞으로 걸어갈 여정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상되는 함정도 주의하여 피할 수도 있습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얄팍한 감정을 잘 소화할 수 있다면 사실 그들은 선생님이자 멘토와 같은 소중한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요.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가장 저항이 큽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시작의 저항을 뚫으며 한 발 한 발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밖으로 향하는 눈을 돌려서 나로 한 번 돌아와 보세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여러분의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해 보는 겁니다. 진정한 나의 위치를 알고, 앞으로 더욱 성장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오직 실천과 행동이라는 해결책만을 눈앞에 두고 있을 것입니다.







이진의 브런치 매거진 <엇쓰기 모임> 정주행 하기


프롤로그

내 안의 엇, 하는 순간을 찾아 떠나는 글쓰기 모임


1주 차: 오리엔테이션

─ ① 엇쓰기가 뭐예요?

─ ②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③ 지하 암반층에서 엇쓰기

─ ④ 엇쓰기, 어떻게 하는 건데?

─ ⑤ 나만의 넷플릭스에 접속하라

─ ⑥ 엄마 김치의 비밀 (현재 글)

─ ⑦ 리쓴! 나의 일상 리듬

─ ⑧ 엇쓰기의 효능

─ ⑨ 자기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진 인스타그램 @leejinand

엇쓰기 모임 인스타그램 @eot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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