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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이 아퍼요

by 모라의 보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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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구부릴 때마다 통증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의사선생님은 힘줄염같다고 하셨다. 약을 먹고 괜찮으면 다행, 낫지 않으면 체외충격파치료를 권유한다고 했다.

다행의 또 다행인 점은, 엄지손가락에서 기역자로 구부러지는 마디(내가 아픈 지점)는 그나마 치료 효과가 좋다고 했다. 더 아래로 내려가서 엄지손가락이 손바닥과 닿는 지점이나 손목과 연결된 마디는 잘 낫지 않고 수술도 많은 부위라고 하였다.

왜 엄지를 구부리면 아프지? 다친 적이 없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엄지손가락에 많은 것을 요구하고 의지해 온 사람이었다.

설거지할때 그릇은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수세미를 잡아 돌린다. 그 중 헹굴 때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그릇에서 나는 뽀도독을 체크한다. 그렇게 한 세번쯤 헹구기...

치열이 고르지 않은 이유로 양치할 땐 구석구석 매우 신경을 쓰는데, 칫솔을 잡고 회전하는 것은 내 오른손 엄지이다. 나머지 손가락은 칫솔을 들고 있을 뿐이고 치아사이와 닦는 방향은 모두 엄지손가락에 힘을 모아 스핀(?)을 준다. 맨 안쪽의 어금니 뒤를 책임지고 클리어해주는 것도 모두 엄지뿐.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니 연필, 펜, 붓 중 하나는 매일 들고 있는데 필기도구를 잡을 때 엄지가 완벽한 기역자로 구부리고 필기도구를 어부바해줘야 제대로된 글씨가 써진다. 힘을 빼고 시작해도 힘을 엄청 주게 되어 있어서, 다 적고 나면 손가락이 아플 때도 많았다.

머리 감을 때도 엄지가 힘주어 리드해줘야 다른 손가락들이 제대로 거품도 내고 두피도 청소해준다...

이 작은 손가락 마디하나가 그 동안 이 거대한 몸뚱이의 기초적인 생활을 책임지고 수행해주던 집사였던 것이다.

여튼 약을 먹고 엄지집사를 내내 재우고 다른 일꾼들을 부리니 점점 통증은 사라졌다. 대신 왼손 엄지를 부집사로 앉히고 많은 일을 처리하였다.

2주가 지나고 왼손 엄지가 아프기 시작.... ㅠㅠ

양쪽 엄지가 완전히 아픈것도 아닌 그렇다고 안아픈 것도 아닌, 어정쩡한 통증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빠졌다.

회사 키보드를 칠 때 엄지가 힌지(지지대) 역할을 하는데 의사선생님 말로는 힌지를 줄여야 한다고했다. 고객상담의 모든 것을 기록해두어야 하는 내 일은 두 엄지 힌지집사들을 가만히 둘 수 있을 것인가... 나의 고질적인 질환, 고양이털알레르기 외에 엄지손가락 힘줄염이 추가되는 것일까..

재미도 감동도 성과도 없는 별 부정적인 생각도 다 든다. 뭐야 이제 맥주 마실 때 오징어 다리도 힘줘서 못뜯는 거잖아..!

엄지손가락이 아픈 것이 이렇게 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인지 미처 몰랐다. 잘 다독여서 80세까지는 혼자 힘으로 오징어 다리 쯤은 쫙쫙 뜯을 수 있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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