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있다 이제 나타났냐고
몇 년 전, 퇴근길에 그녀와 함께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자매지만, 신년이 되면 사주 보는 걸 즐겼고 내게 종종 같이 가자고 했었다. 그날도 역시 그랬다.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침 사주타로 가게가 있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지옥 가면 어쩌려고?"
"그러게 불지옥 가려나."
한바탕 깔깔 웃어대며 사주타로 가게로 들어갔다. 점쟁이는 그녀의 사주를 보더니, 마흔에 찐사랑을 만나 마흔둘에 결혼을 한다고 했다. 포복절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비혼주의자였고, 사내 복지제도 개편 TFT에서 '비혼식을 올리면 결혼 축하금을 주는 게 어떠냐'는 의견까지 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로 보는 거라지만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다며 웃고 헤어졌다.
그런 그녀가 다가오는 3월에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났다 했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수많은 이유들을 지워준 사람이라고. '다 짝이 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청첩 모임에 나온 옛 동료들이 "비혼주의자는 어디 간 겁니까!"라고 하자,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있지도 않은 예비신랑을 탓했다. "그러게, 어디 있다 이제 나타난 거야!"
비혼주의자의 때늦은 결혼 선언에 놀란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시집은 언제 갈 거냐고 타박하던 시기를 지나서일까? 기뻐하실 줄 알았던 부모님은 생각지도 않은 일에 되려 헛헛해하셨다고 한다. "야, 우리 아빠가 나보고 집에 와서 신부수업받으래. 마흔둘에 시집가는 딸한테 할 소리냐!" 그녀의 무뚝뚝한 아버지는 딸내미가 신혼집으로 이사 가기 전, 좀 더 얼굴을 자주볼 구실을 만드느라 바빴다. 심지어 그녀의 형부는 "왜 결혼한대?"라고 했다가 그녀의 언니에게 "그럼 넌 왜 했는데?" 타박을 들었다고 한다.
사주는 못 믿어도, 인연은 때가 되면 온다는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한 때 비혼을 외치던 그녀가 결국 결혼을 결심한 건, 결혼이 인생의 목표여서가 아니라 결혼해도 좋을 만큼 괜찮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이든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고, 그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녀의 선택을 기꺼이 축하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