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의 군중 속에서
새벽 3시. 인스타그램을 연다.
스토리 업데이트 157개. 새 게시물 89개. DM 23개.
모두가 깨어있는 것 같다. 파리에서 브런치 먹는 친구, 도쿄에서 야경 찍는 선배, LA에서 요가하는 동료.
24시간 연결된 세상. 지구는 잠들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로울까?
500명의 친구 목록을 스크롤한다. 연락할 사람이 없다. 아니, 연락하고 싶지 않다.
'좋아요'는 누르지만 대화는 하지 않는다. '하트'는 보내지만 마음은 보내지 않는다.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기술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카페에 앉았다.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뭐예요?"
옆 테이블 사람이 묻는다. 알려준다.
"감사합니다."
대화 끝.
각자 노트북과 스마트폰 화면으로 돌아간다. 같은 공간, 다른 세계.
옛날 카페를 떠올렸다.
담배 연기 자욱하고, 사람들이 떠들고, 신문 넘기는 소리가 들리던. 모르는 사람과도 날씨 얘기를 하고, 커피 맛을 평가하고.
지금은?
조용하다. 키보드 소리만 탁탁. 각자의 디지털 동굴 속에 갇혀 있다.
하이데거의 '함께-있음'이 생각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함께 있는 존재라고 했는데,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따로 있다.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
읽음 표시가 떴다. 1이 사라졌다.
5분... 10분... 30분...
답장이 없다.
불안하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관계가 끝난 건가? 아니면 그냥 바쁜 건가?
'읽씹'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이유를 안다.
예전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며칠, 몇 주가 걸려도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읽었는지 확인된다.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한다. 조금만 늦어도 관계가 위태로워진다.
바우만의 '액체 근대'가 떠올랐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 관계도, 연결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더 집착한다.
유튜브가 추천하는 영상들을 본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 내가 봤던 것과 비슷한 것들. 내 취향에 맞춘 것들.
편하다. 하지만 갑자기 무섭다.
내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다른 생각, 다른 취향, 다른 의견을 만날 기회가 사라진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고, 나와 비슷한 콘텐츠만 소비한다.
에코 챔버(Echo Chamber). 내 목소리만 메아리치는 방.
밀의 '자유론'이 생각났다.
"다양한 의견의 충돌 속에서 진리가 드러난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충돌을 피하게 만든다. 편안한 것만 보여주고, 동의하는 것만 들려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외로워진다. 진짜 타자를 만나지 못하니까.
일주일 전, 실험을 시작했다.
저녁 9시 이후 스마트폰 끄기.
첫날은 지옥이었다.
손이 자꾸 핸드폰을 찾는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서 나만 소외된 기분이다.
삼일째, 조금 달라졌다.
책을 읽었다. 종이책을. 일기를 썼다. 손으로. 창밖을 봤다. 그냥.
일주일째, 깨달았다.
놓친 게 없다는 것을. 오히려 찾은 게 많다는 것을.
고요함. 집중. 사색. 그리고... 진짜 나.
소로우가 월든으로 간 이유를 이제 안다.
"나는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
우리도 가끔은 디지털 숲을 떠나야 한다.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
프랑스에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
퇴근 후 업무 메일에 답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 휴가 중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권리.
부럽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법적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연결을 끊을 용기가 아닐까?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용기. 스토리를 올리지 않을 용기. 읽씹할 용기. 로그아웃할 용기.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결되지 않을 자유도 있다. 외로울 자유도 있다.
새벽 4시.
창밖을 본다. 불 켜진 창문들.
각자의 방, 각자의 스크린 앞에 있을 사람들. 하지만 같은 고독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연대할 수 있다는 것.
진정한 연결은 와이파이가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 같은 고독을 품고 있다는 것.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
레비나스가 말했다.
"타자의 얼굴에서 무한을 본다."
스크린이 아닌 창밖에서, 프로필이 아닌 실제 얼굴에서, '좋아요'가 아닌 진짜 마음에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같은 새벽을 맞는다.
디지털 시대의 고독을 품고. 하지만 그 고독이 우리를 연결하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