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역설

행복 지수 측정의 아침

by 윤숨

시즌 2 - 4장. 행복이라는 역설

행복 지수 측정의 아침

"오늘 당신의 행복 지수는?"

스마트워치가 묻는다. 아침 7시 정각.

슬라이드를 움직인다. 1에서 10까지. 어제는 6, 오늘은... 5? 7?

잠깐, 행복이 숫자로 측정되는 거였나?

앱이 분석 결과를 보여준다.

"당신의 평균 행복 지수는 6.3입니다. 상위 45%에 해당합니다. 운동을 더 하면 7.5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웃음이 나왔다. 씁쓸한 웃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행복)'가 떠올랐다.

그에게 행복은 삶 전체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었다. "한 마리의 제비가 여름을 만들지 않듯, 하루의 행복이 행복한 삶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매시간 행복을 측정한다. 마치 주식 시세처럼.

긍정의 독재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행복은 선택입니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쓰세요!"

자기계발서의 단골 멘트들.

회사 동료 K는 매일 감사 일기를 쓴다. 점심시간마다 자랑한다.

"오늘도 세 가지 감사한 일을 찾았어!"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지쳐 보인다.

어제 그녀가 화장실에서 우는 걸 봤다. 상사에게 혼나고 나서였다.

10분 후, 그녀는 웃으며 나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돼. 이것도 성장의 기회야."

무서웠다.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의무.

바바라 헬드의 '긍정의 독재'가 떠올랐다.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죄가 되는 시대. 슬퍼할 권리, 화낼 권리, 우울할 권리를 빼앗긴 시대.

SNS 속 행복 전시장

인스타그램을 연다.

#행복스타그램 2,847만 개 #오늘도행복 1,592만 개 #소확행 3,421만 개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브런치, 여행, 선물, 미소. 필터로 보정된 행복들.

나도 사진을 올린다. 커피 한 잔. 예쁜 각도로.

"여유로운 오후 #소확행 #카페스타그램"

진실은? 실직 통보받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올리지 않는다. 불행은 업로드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생각났다.

우리는 행복을 '소유'하려 한다. 사진으로, 기록으로, 증명으로.

하지만 행복은 '존재'의 양식이다. 보여주는 순간, 사라진다.

비교의 덫

"연봉 1억 넘으면 행복할 줄 알았어."

대학 동창 J의 고백.

"근데 주변에 2억, 3억 버는 애들 보니까..."

행복의 역설이다.

절대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학의 '이스털린의 역설'이 떠올랐다.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증가하지 않는다.

왜?

비교하니까. 더 가진 사람이 항상 있으니까.

부탄은 GDP 대신 GNH(국민총행복)를 측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행복이 아니라 성공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성공마저 남과의 비교로 측정한다.

불행 회피의 삶

"저는 그냥 불행하지 않으면 돼요."

상담사에게 한 말.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에요."

상담사가 말했다.

"행복의 반대는 무감각이죠."

맞는 말이었다.

불행을 피하려고 애쓰다가 행복도 놓치고 있었다.

위험을 피하려고 도전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안전하지만 공허한 삶.

스피노자는 구분했다.

능동적 정서와 수동적 정서.

기쁨은 능동적 정서다. 우리의 존재 역량을 증가시킨다. 슬픔은 수동적 정서다. 우리의 존재 역량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무감각은? 증가도 감소도 없다. 그저 정지.

새벽의 발견

불면증이 있다고 했더니 다들 위로한다.

"힘들겠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새벽이 싫지만은 않다.

고요함 속에서 느끼는 평화.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자유. 어둠 속에서 보이는 별빛.

이것도 일종의 행복 아닐까?

남들이 정의한 행복은 아니지만 나만의 행복.

밀은 말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그렇다면 나는.

푹 자는 사람보다 새벽을 사색하는 사람이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행복의 재정의

오늘 스마트워치가 또 물었다.

"당신의 행복 지수는?"

앱을 지웠다.

대신 일기장에 썼다.

"오늘 새벽, 차가운 공기가 좋았다. 쓴 커피가 입안에서 돌았다. 떠오르는 해를 봤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게 몇 점짜리 행복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진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은 다른 세계에 산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세계에 살고 있을까?

행복과 불행 사이. 빛과 어둠 사이. 잠과 깨어있음 사이.

그 경계의 세계.

그리고 그것도 하나의 세계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

오늘도 나는 그 세계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는다.

측정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그런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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