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의 함정

가면을 벗어던지는 순간

by 윤숨

시즌 2 - 5장. 진정성의 함정

가면을 벗어던지는 순간

"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신입사원 환영회. 새로 온 K의 자기소개.

3개월 후.

K는 '눈치 없는 애'가 됐다. 회의 시간에 "그건 비효율적인데요"라고 직언했다가. 회식 때 "저는 술 싫어해요"라고 거절했다가. 팀장에게 "왜 야근해야 하죠?"라고 물었다가.

그녀는 진정성 있게 행동했다. 하지만 조직은 그녀를 거부했다.

"조금만 융통성 있게 행동해."

선배들의 조언. 하지만 K는 고개를 저었다.

"가식적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6개월 만에 퇴사했다.

루소의 '고백록'이 떠올랐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겠다."

하지만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새벽 3시. 거울 앞에 섰다.

"이게 진짜 나야."

하지만 어느 나?

회사에서의 프로페셔널한 나? 친구들 앞에서의 유쾌한 나? 가족 앞에서의 착한 나? 혼자 있을 때의 게으른 나?

포스트모더니즘은 말한다. 고정된 자아는 없다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다중 자아만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진정성이란 뭘까?

"Be yourself"라는데, 어느 self?

정신분석가 위니컷은 구분했다. True self와 False self.

하지만 그 경계는 어디에? 모든 사회적 가면이 거짓일까? 모든 혼자만의 모습이 진실일까?

SNS와 진정성 마케팅

"#무보정 #노필터 #있는그대로"

인플루언서 J의 새 게시물.

하지만 자세히 보면: 완벽한 자연광 아래서 최적의 각도로 여러 번 찍은 사진 중 하나.

진정성마저 연출되는 시대.

"솔직한 일상 공유해요!"

하지만 부정적인 건 빼고.

"꾸미지 않은 모습이에요!"

하지만 1시간 준비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예요!"

하지만 가장 보여주고 싶은 나고.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가 생각났다.

원본 없는 복사본.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우리의 진정성도 시뮬라크르가 된 건 아닐까?

솔직함의 폭력

"나는 솔직한 사람이야."

친구 M의 말버릇.

"너 그 옷 안 어울려. 솔직히 말해서." "네 남자친구 별로야. 내 생각엔." "너무 살쪘어. 건강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상처받았다고 하면:

"나는 그냥 솔직했을 뿐이야. 진실을 말하는 게 뭐가 잘못이야?"

사르트르는 말했다. "진정성은 자유와 책임을 포함한다."

하지만 M의 솔직함은? 자유만 있고 책임은 없다.

칸트의 '아름다운 거짓말' 개념이 떠올랐다.

살인자가 친구를 찾아왔을 때, 친구가 안에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옳을까?

진정성이 항상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역할이라는 안전지대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친구로서..."

우리는 역할 뒤에 숨는다.

그게 더 편하니까. 진짜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때론 그 역할이 나를 지켜준다.

'프로페셔널'이라는 가면은 감정 노동자를 보호한다.

'어른'이라는 가면은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보호한다.

융의 '페르소나' 개념이 떠올랐다.

가면은 거짓이 아니라 보호막이다. 문제는 가면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생긴다.

새벽의 진정성

새벽은 솔직한 시간이다.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보여줄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새벽에 쓰는 일기조차 미래의 나에게 보여주려고 편집한다.

'이렇게 깊은 생각을 했구나' 싶게.

완전한 진정성은 가능할까?

데리다는 말했다. "순수한 현존은 없다."

모든 것은 이미 매개되어 있다. 언어로, 문화로, 무의식으로.

그렇다면?

불완전한 진정성 긍정하기

오늘 깨달았다.

완벽한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가면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항상 진실해"라는 가면. "나는 가식이 없어"라는 가식.

차라리 인정하자.

우리는 모두 연기한다. 상황에 맞게, 관계에 맞게.

그리고 그게 나쁜 게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처럼.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함. 그것도 일종의 진정성이다.

연극 무대 위의 배우가 진짜가 아닌 것은 아니듯이.

오늘도 나는 여러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그 가면들도 모두 나의 일부다. 선택하고, 연기하고, 책임지는 나.

진정성은 가면을 벗는 게 아니라 가면을 의식하는 것.

그리고 가끔은 가면 뒤의 얼굴을 잊지 않는 것.

새벽처럼 고요한 시간에 나에게 묻는 것.

"오늘도 잘 연기했니?"

그리고 대답하는 것.

"응, 최선을 다했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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