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의 의미
"5분만 더..."
아침 알람이 울린다. 스누즈 버튼을 누른다.
5분 후 다시 울린다. 또 누른다. 결국 30분을 그렇게 보낸다.
이상한 일이다.
처음부터 30분 뒤에 일어날 거라면 왜 일찍 알람을 맞춰놓을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계획 오류'라고 부른다. 미래의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
"5분 뒤의 나는 개운하게 일어날 거야."
하지만 5분 뒤의 나도 여전히 나다.
하이데거의 '시간성' 개념이 떠올랐다.
인간은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 과거에서 오고, 현재에 있고, 미래로 간다.
하지만 우리는 늘 현재에만 있다. 5분 전의 나도, 5분 후의 나도 결국 지금의 나일 뿐.
"요즘 어떻게 지내?" "바빠... 죽겠어."
현대인의 인사법.
바쁘다는 것이 자랑이 됐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성공의 증표가 됐다.
캘린더를 연다. 빽빽한 일정들. 겹치는 미팅들.
"저는 정말 1분 1초가 아까운 사람이에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하루를 추적해봤다.
SNS 스크롤: 2시간 17분
유튜브: 1시간 43분
의미 없는 웹서핑: 1시간 28분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떠올랐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우리는 바쁘다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에는 시간을 쓰지 않는다.
바쁨은 회피다. 생각하지 않기 위한. 마주하지 않기 위한.
"배송 왜 이렇게 늦어요?"
이틀 걸린다는 택배가 3일째 안 왔다. 짜증이 난다.
10년 전엔 일주일이 기본이었는데.
즉시성의 시대. 당일 배송, 즉시 응답, 실시간 연결.
기다림이 사라졌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말했다. "욕망은 지연될 때 더 강해진다."
기다림이 주는 달콤함. anticipation의 즐거움.
다운로드가 느렸던 시절, 음악 한 곡을 30분 기다리며 설렜던 마음.
지금은? 0.1초만 로딩이 걸려도 창을 닫는다.
우리는 기다림과 함께 기대와 설렘도 잃었다.
노트북으로 보고서를 쓰면서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저는 멀티태스킹에 능해요."
정말?
심리학 연구는 명확하다. 인간의 뇌는 진정한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
그저 빠르게 전환할 뿐. 그 과정에서 효율은 40% 떨어진다.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이 떠올랐다.
진정한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없다. 체험의 밀도와 깊이가 시간의 본질이다.
1시간 동안 세 가지를 하는 것과 1시간 동안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것.
어느 쪽이 더 긴 시간일까?
불면증 때문에 얻은 것이 있다.
새벽 시간.
남들이 자는 시간. 전화도, 메시지도, 요구도 없는 시간.
롤랑 바르트는 이를 '중성적 시간'이라 불렀을까.
생산적이지도, 비생산적이지도 않은. 그저 존재하는 시간.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이 2시간은 24시간과 다르다.
느리게 흐른다. 깊게 스며든다. 고요히 머문다.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했다. 사람들은 그의 산책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규칙적인 시간 속에서 그는 무한한 사유를 했다.
나에게 새벽은 그런 시간이다.
"시간이 없어."
정말 그럴까?
평균 수명 80세. 29,200일. 700,800시간.
지금 35세라면 16,425일 남았다.
충분할까? 부족할까?
스토아 철학자들은 '메멘토 모리'를 외쳤다.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생각하면 시간이 달리 보인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구분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이 명확해진다.
하이데거는 말했다. "죽음을 향한 존재"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유한함을 아는 것. 그것이 시간을 선물로 만든다.
영어로 present는 '현재'이자 '선물'이다.
우연일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지금뿐.
마음챙김(mindfulness)이 유행이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세요."
하지만 쉽지 않다.
머리는 미래를 계획하고 마음은 과거를 후회한다.
몸만 현재에 있을 뿐.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했다. "시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 안다. 하지만 설명하려 하면 모른다."
시간은 신비다.
흐르는 것 같지만 멈춰있고 멈춘 것 같지만 흐른다.
오늘, 작은 실험을 했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30분을 이야기했다. 특별한 용건 없이.
그것이 선물이었다.
내 시간을 준 것. 온전히 그를 위한 시간.
현대인이 가장 인색한 것이 시간이다.
돈은 빌려주면서 시간은 아까워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시간을 주는 것 아닐까?
레비나스는 말했다. "시간은 타자와의 관계다."
혼자서는 시간이 무의미하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시간은 의미가 된다.
오늘도 새벽이다.
이 시간을 누구와 나눌까? 잠 못 드는 당신과.
글로써. 생각으로써. 공감으로써.
시간이라는 선물을 주고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