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 and Oct 27. 2023

최고 응원단은 모두 낯선 이들

요즘 말로 하자면 나는 생활 중엔 엄격한 J, 여행 중엔 극단적 P이다. 그로 인해, 나의 운동 루틴은 지난 몇 년간 바뀐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는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도 월, 수, 금, 토의 아침 조깅은 반드시 시켜야 하는 나의 생활 습관으로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날마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운동하는 다른 이들과 정기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사실 Runningcommunity 라는 SNS 클럽에서 가끔 올라오는 짤을 보면 러너들에게 가장 힘을 주는 사람은 마주치는 다른 러너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 농담들이 있다. 정말 그렇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마주친 분들과 처음엔 고개를 까닥이거나 눈인사를 하다가 점점 적극적으로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몇 년간 아침마다 조깅 길에 마주쳤던 두 분과 심지어 멈추어 서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때 대화를 생각해 본다.


1. 공원에서 매번 마주치던 할머니

사실 할머니이긴 하신데, 매우 젊어 보이시는 할머니다. 이 분은 공원을 한 바퀴 걸으시면서 지나쳐 가는 사람들과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하시는 분이다. 사실 코로나 시국에는 거의 매일 보다가 최근 내가 매번 뛰던 공원에 자주 가지 않으면서 한동안 뵙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공원에 가서 가끔 뛸 때에도 뵙지 못하여 살짝 걱정을 하던 중 얼마 전 다시 공원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마주쳤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뛰다가 멈추어서 (정말 큰일이 아닌 이상 뛸 땐 절대 멈추지 않는다. Strava는 계속 내 시간을 재고 있기 때문에...)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께 요즘 왜 안 나오셨냐고 하니 건강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로 크로켓 대회 뛰러 다녀오셨단다. 역시 고수... 매일 아침 운동하시며 관리하시는 분이니 노년을 너무나 멋지게 보내시는 할머니셨다.


2. 길에서 지나쳐 가며 인사하는 항상 같은 운동복의 내 또래 여인

사실 이 분은 꽃핑크 저지 운동복에 안경도 끼고 심각한 얼굴로 달리셔서 처음엔 인사를 안 받아 줄까 봐 매우 소심하게 목례로 인사를 시작했다. 점점 자주 마주치며 손도 올리고 가끔은 소리 내어 Hello 인사도 하던 중 얼마 전에 운동이 거의 끝나신 듯 마무리로 걷고 계셨다. 그래서 나도 멈추고 서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 분도 근처에 사시는데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나오면 딱 그 시간이라서 그때 뛰신다고... 완전 서로의 상황에 공감을 하면서 진짜 반갑게,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인사를 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오늘 아침에도 마주쳤는데 지난번에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아주 큰 소리로 '안녕하씨오!'라고 인사해 주신다. 나도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지나쳐 갔다.




이렇게 달리면서 마주치는 러너들과 손을 들어 인사한다거나 목례, 미소를 주고받는 날은 달리기도 엄청 잘 되고 하루 종일 기분이 너무 좋다. 싱가포르도 한국과 비슷해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는 문화가 없는데도 이렇게 러너들 사이에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이런 사소한 마주침으로 서로에게 '뛰는 게 힘들지? 나도 알아, 나도 뛰고 있으니까... 하지만 힘 내! 뛰는 건 멋진 일이야'라는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돈도 안 들고 힘도 들지 않는 즐거운 일인지... 그래서 나는 헬스장의 러닝머신보다 길에서 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어떤 러너와 마주칠까? 운동화 끈을 매고 나갈 때마다 가슴이 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