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마음, 남겨진 환상

목 木

by 하이디 준

[이 글은 화요일에 끓어올라야 할 것 같지만 실은 나무가 자랄 땐 비바람도 불고 천둥번개도 친다고 합니다.]



그를 그리워했다가도,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바보 같은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다시 화가 치민다. 더 이상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뒤늦게 사춘기도 아닌 이상한 방황길에 빠진 남편을 두고, 낯선 이들에게서나 축하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치 애를 가졌다고 하자마자 내쳐져버린 내연녀라도 된 것 같은 더러운 기분.


하지만 점차, 그런 상처도 무뎌져간다. 혼자서는 제대로 밥을 챙겨먹지도 않는 그에 대해 정말 더 이상 그 무엇도 기대하고 싶지 않다. 친정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지 못해도 그만이다. 제 부모에게서 약속받은 것들을 빼앗기고 농락당하면서도 효도랍시고 여행을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은 떠오르고, 임신한 아내에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죽어도 떠올리지 못할 사람이 되었으니까.


남편과 아내의 관계 같은 건, 이제 아무래도 좋은 느낌.

그냥 아이의 아버지로 남아있어 준다면 감지덕지인 정도일지도.


주말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던 나날들도 잠시, 그의 말들은…

그냥 그의 입도 틀어막아 버리고 싶다.

정말 간절히 고아와 집사의 남성상을 그리고 있는지도.


이젠 정말 그가 바라던 측은지심만 남은 걸지도 모르겠다.

거지같다. 자격지심과 질시, 박탈감으로 이뤄진 인간들 같은 건 이제 지긋지긋해.


나는 환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순수하고 단순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들로.




하지만 그럼에도…

타로는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하고 있고,

모든 불만은 여기에 쏟아낸 뒤에,

다시 바보처럼 그에게로 갈 거라고 말한다.


또한 그가 그만의 타로를 마련한 이후인지는 몰라도,

그의 마음 속의 나, 또한 달라졌다고.

물론, 어쩌면 과거의 추억으로 미화된 모습을 여전히 보는 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더 이상 균형과 판결의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타로는 언제나처럼 나에게

가장 정직한 거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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