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망덕한 인간에게 기적을 선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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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준

삶의 아이러니란 때로 정말 누군가 연출하는 희극 같다. 모두가 자신은 자기 인생을 직접 살아나가고 있는거라 착각하지만, 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온갖 물살에 휩쓸리면서 기술적으로 숨을 쉬어가며 가라앉지 않으려 애쓰는 일 뿐이다.


아이가 생겼다.


간호사의 눈엔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햇수로는 많은 나이를 먹은 어른이지만, 나로선 애가 애를 낳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늦든 빠르든 누구에게나 처음은 그저 처음일 뿐이다. 쉽게 적응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다.


아니길 빌었다. 그가 나를 밀어내는 순간에 생긴 아이라니, 구차하고 처량했다. 서러워서 더 울었고, 그래도 그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돌아섰다. 그가 미웠고, 이 사태를 초래한 그의 가족들은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역시, 무엇보다, 스스로의 주박에 사로잡힌 내 한도 끝도 없는 한심함이 숨이 막힌다.


안 좋은 생각들, 안 좋은 말들, 쉼없이 머릿속을 그득그득 채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초음파 사진으로 마주한, 타로가 예고한 나와 그에게 주어진 선물, 그 작고 하얀 빛에 더없이 죄스러웠다. 호르몬 탓에 더 비관론자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감안해서 모든 걸 걸러서 느껴야 한다고 주의를 줘보지만, 어쩌면 그렇게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더 쉽지 않다.


그래도, 적어도 고향에 있다. 초록이 무성한 계절에 둘러싸일 수 있어서, 어쩌면 조금만 더 견뎌내면, 정말 시간이 해결해줄지 모를 일이다. 어제는 비록 비가 쏟아져 중도에 그만둬야 했지만, 산책을 나서며 처음으로 실제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작은 별’이라고 말을 걸어보며, 정작 역시 아직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멀게 느껴져서 어색해했다. 아직은, 그냥 내 환상 속, 정령들과 비슷한 무게감. 어쩌면, 날 구해준 점에서도 그런 정령들과 비슷한 힘일지도. 물론 그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지만, (그건 뭐 그의 멍청함 탓이 더 큰 거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지)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작은 별’이 별똥별마냥 슈웅하고 떨어져서, 퍼펑~하고 모두 날려버린 것 같은 모양새랄까.


사실상 나는 소원대로 지루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먹고 놀게 생겼으니까. 적어도 이제 배고파서 우울할 일도 없고, 혼자 꾸역꾸역 먹으며 질질 짜는 신파를 찍을 필요도 없고, 홀로 편히 꿈도 없는 잠을 잘 수도 있고. 살림을 하며 속에 화를 쌓을 일도 없고. ‘작은 별’은 그야말로, 이미 오래 전에도 조금은 짐작했던 대로, 면죄부이자 만능카드. 고향에서조차도 그 효력은 마찬가지. 만일 나 홀로 왔더라면 편히는 커녕 오래 있지도 못했을 수도. 하지만 ‘작은 별’로 인해 내 모든 것은 용서되고, 나는 특별대우를 누리는 존재가 된다. 씁쓸하도록 어이가 없지만, 타로는 모든 면에서 진실만을 말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지만, 내가 ‘내 인생의 남은 신비’ 운운하며 건방을 떨자마자 모든 답들이 눈 앞에 떨어졌고, 선물마저 주어졌다. 버릇없는 내 입을 단번에 틀어막는 듯이.


비워내야 한다. 진득한 감정의 찌꺼기들과, 거기서 올라온 악취 같은 생각들을. 겸허해져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나를 지켜주고, 바라봐주고, 내 하찮은 기도까지도 모두 남김없이 들어주는 이들을 위해서.


나는 사랑받고 있다.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

나는 이 기적을 온전히, 순수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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