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러다 죽어."
작년, 어느 덥던 날 남편이 말했다.
그즈음의 나는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책 읽고 강의를 보고,
8시에 출근했다가 오후 5시에 퇴근했다.
퇴근하고 꼬마가 자는 시간 전까지
꼬마와 남편과의 시간을 보내며 육아와 집안일을 했다.
꼬마를 재우고 나면 집에서 운동하고
운동 끝내고 자정까지 출판사에 보낼 원고 썼다.
취미로 자정부터 새벽까지 취미로 소설을 썼다.
그러다 보면 꼬마가 울음을 터뜨리며 새벽에 깨는데
아이를 달래다가 잠깐 기절하듯 잠들면
다시 새벽 5시. 일어날 시간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 지 가늠해 봤는데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았다.
꼬마를 재우고 왔다가 남편에게
그러다 죽을 거라는 소리를 들은 나는
눈을 도르르 굴렸다.
내 하루 일과를 생각하다가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살살 남편 눈치를 보았다.
주말에는 강의 들으러
서울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남편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지금 눈치를 잘 봐야 다녀올 수 있었다.
남편은 그동안 참았던 걸 쏟아내듯이 말했다.
포기해야 하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선 지금 해야 하는
주말에 있을 부동산 강의 과제가 떠올랐다.
조금 있으면 꼬마가
자주 깨는 새벽 시간이라
이야기가 길어지면
그 과제를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다 남편을 봤는데
한참 벼른 얼굴이라 과제를 포기하기로 했다.
남편을 포기할 순 없었다.
남편은 내가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를 선택했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잘 해보려고 한다고
내 노력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가
앞으로 더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 말이 아니지 않냐며 머리 아파했는데,
요지는 할 일을 좀 줄이라는 거였다.
아이랑 남편이랑도 잘 지내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고,
직장과 관련된 커리어도 계속 쌓아야 하고,
재테크 공부도 해야 하고,
개인적인 취미 생활도 해야 하고,
또 체력과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도 계속해야 했다.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아무리 봐도 뺄 것이 없었다.
몇 번의 이야기가 오고 가고,
결국엔 실토하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게 잘 안돼."
빼야 하는 걸 아는 데
그게 잘 안되었다.
사실 내 눈에는 뺄 게 없었다.
꼬마는 당시 돌쟁이었는데
아이들은 만 3세까지가
결정적 시기라고 했다.
부모의 사랑을 가득 주어야 했다.
남편은 영원한 내 편이지만
우리가 잘 지내기 위해서
배우자로서 나도
나름대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자산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직장은 내 자아실현이자 생계였다.
그 안에서 최소한 1인분의 역할은 해야 했고
하다 보면 욕심이 나서 일을 벌이게 되었다.
직장 밖에서 운이 좋아서 하게 된 출판은
보람도 있고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취미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쓰고 글 쓰다가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그게 또 그 하루를 즐겁게 만들었다.
해야 하는 것들이 잔뜩인데.
미라클 모닝은
다른 사람들도 다들 하던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정도는 다 알아야 한다던데.
운동을 해야 이 생활이 유지가 될텐데.
거기다 취미 생활도 안 하고
어떻게 살아?
화가 난 남편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몇 개는 더 참았다.
뭐라도 줄이라고 말하는 남편은
그날부터 내가 몇 시에 자는지,
몇 시에 일어나는지 계속 묻곤 했다.
어느 날은 늦게 잤는데 일찍 잤다고 하기도 하고,
일찍 일어났는데 늦게 일어났다고 거짓말도 했다.
같이 살고 있으니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났다.
남편과의 이 대화는 도돌이표처럼
한 시즌에 한 번씩 반복이 되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