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상하다는 신호는
배고픈 것으로만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운전을 하는데,
자동차 하나가 굉장히 가까운 거리 안에서
내 차 앞으로 휙 끼어들었다.
웬만한 운전자들끼리는
갑자기 끼어든다 하더라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놀랐던 내가
브레이크 페달을 급하게 밟았다.
"하, 진짜. 왜 저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화가 나면
절로 숨이 깊게 내쉬면서
숨과 함께 말이 튀어난다는 걸 알았다.
누가 봐도 예의가 없는 자동차였다.
그때부터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차 안에서
혼자서 씩씩거리기 시작했던 게.
미친 거 아니야?
아니, 그러다가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와, 저러다가 사고 한 번 나봐야 지 정신 차리지.
도착지까지 한 30분 걸렸는데,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가
거친 숨을 내쉬다가 하며 운전을 했다.
그때 내가 했던 저주의 말은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운전을 해서
어떤 길로 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차 문을 세게 닫고 나서 했던 생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거야? 하, 정말..."
돌아보고 나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사실 내가 제일 이상했었다.
예의 없고 위험하게 운전하는 차를 만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남은 운전 시간 내내
씩씩거리지는 않았다.
정작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른 운전자들의 배려로
그나마 사고 안 나고
겨우겨우 도로를 다니고 있는 처지의 나였는데 말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셈이었다.
지나 잘하지,라는 사투리가
지금은 저절로 나오지만.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세상에는 온통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했다.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는
'불행하면 남에게 관심이 많아진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때 나는 쫓기듯 살고 있어서
마음에 작은 공간마저 허락하지 못했다.
마음에 이것저것 들이부은 탓에
흘러넘치다 못해
바닥에 흘린 것까지 계속 주워 담고 있었다.
그러니 '이해', '공감'이나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지' 같은
태평한 소리 따위는 들어올 수 없었다.
죄송한 걸 알면 하지를 말아야지.
그걸 왜 못해?
나였으면 그렇게 말 안 하지.
마음속에 스스로 세운 잣대를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 잣대는 아주 날카롭고 촘촘해서
사실상 누구도 통과하지 못할 견고한 거름망이었다.
나에게 조금 서운하게 했던 사람.
이해 안 되던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 낱말 단위로 쪼갰다.
형용사, 동사로 나누고
건네는 말투, 행동, 표정까지 살피니
살아남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지 못한 사람 중
가장 횟수가 잦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나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준 적이 없지만
독서, 독서록 쓰기, 강의 보기, 영어 회화 공부,
돌쟁이 소통 육아(?), 저녁 운동, 취미생활 등으로
할 일이 쌓여있다 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뭐라도 했다.
아침 5시, 아니면 늦어도 5시 30분쯤에는 일어나야
그 하루 한 바퀴가 어떻게든 굴러가는데
기절하듯이 있다가
7시에 일어나면 아침부터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 왜 이래? 미쳤다 미쳤어...
남들에게 향하던 독한 말들을
가장 많이 듣던 사람이 나였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
늦기는커녕 직장에 10분 일찍 출근했고
딸은 즐겁게 남편과 어린이집에 갔으며
친정과 시댁 어르신들은 건강했고
날씨는 맑았다.
그러나 일정 관리표에서 완수되지 못한 할 일을 보며
하루 종일 내 머리 위에는 장마 전선이 형성되었다.
열심히 산다는 말이,
언제부턴가 압박이 되었다.
그 압박은 남을 재단하는 잣대가 되었고,
결국 가장 잔혹하게 겨눈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리는데,
왜 불안만 커지는 걸까.
열심히 산다는 게
곧 잘 사는 것과 같은 말일까.
그렇게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게
내달리기만 하던 내게 의문점 하나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