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이런 말을 남겼다.
과거에 살면 우울하고, 미래에 살면 불안하며, 현재에 살면 편안하다.
노자
이 말을 예전에 듣고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과거에 산다는 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에 대한 말 같은데,
도대체 미래에 산다는 말이 뭐야?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아니고...
이제는 안다.
사람이 지나치게 계획적으로 살거나
앞으로 할 일을 걱정하다 보면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살게 된다.
몸뚱이는 여기에 있는데
정신은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한창 정신이 저 멀리 날아가 있던 때
도대체 왜 그렇게 살았냐고 물어본다면,
가장 내 마음을 크게 지배했던 것이
‘효율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뭐든 시간 하나하나가 의미 있어야 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아이를 키우고 있던 터라
시간을 조금이라도 내려면
잠을 줄이거나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했다.
만나야 하는 사람만 만나고,
운동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책은 몇 페이지까지 읽고,
직장 일은 언제까지 마쳐야 하는지,
머릿속은 계획을 빙자하는 빽빽한 계산으로 가득했다.
직장이나 직장 외적으로 일이 있으면
일할 게 있으면 제일 먼저 물었다.
"언제까지 해야 해요?"
스스로 할 일이 꽉 차있으니
뭘 추가하려면 계산을 꼼꼼히 해야 했다.
분 단위로 쪼개 쓰며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낸다고 믿었지만
부작용은 금세 드러났다.
사람을 만날 때 계속해서
딴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지인이나 가족들과 같이 있다가도
'아 참, 메일 보내는 거 잊어버렸네.'
'이따가 책 읽어야 하는데.'처럼
일이나 자기 계발 관련 일을 머릿속으로 하고 있었다.
몸은 거기 있는데
영혼은 미래에 가있는 터였다.
사실 그때에 나는
한 시간 정도 다음 인생을 살고 있었다.
타임리프 능력도 없는데
나는 미래를 살고 있었다.
이미 다음 과제에 마음을 빼앗긴 채로 말이다.
아기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것도
결과물을 내야 하는 ‘하루의 과제’였고,
주말 나들이를 간 와중에도
집에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순간에 머무르지 못하니
내 앞에 있는 사람도,
내 앞에 있는 장면도
늘 희미하게만 스쳐 갔다.
그때는 체크리스트에서 v 하고 체크된 표시가
곧 나를 증명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은 흘러가고,
일상은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만 보였다.
두 발이 땅바닥을 딛고 있는 게 아니라
약 5cm 정도 살짝 떠 있는 상태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배가 부른데도 자주 허기를 느껴
혼자 있게 되면 꼭 라면 하나에 만두 4개, 계란 2개를 넣어 끓이게 되었던 때,
어릴 때 듣던 언니네 이발관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중에는
'순간을 믿어요'라는 곡이 있다.
이 순간들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게 기쁨이 더 많았어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
-언니네 이발관 <순간을 믿어요>-
정말 순간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걸까?
일상은 그저 사라져 버리는 것일 뿐일까.
삶을 돌아봤을 때
나에게 남는 건 뭐지? 체크리스트?
해야 할 일들이
30분 단위로 정리된 빽빽한 일정표를 보면서
도대체 미래를 사는 이 타임리프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왜 나는 멈추지를 못하는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