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정 Jul 11. 2020

2. 여자와 남자, 생활 속에 여행 넣기

부록. 남자, 여행의 이유

여자와 남자는 어느 해 1월에 만나 같은 해 9월에 결혼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염의 구역질.

기염의 토악질.

토할 게 없어서 기염을 토했다.



선본 거 아니다. 소개팅이다.

연애결혼이 분명하다.

이제와서 말하는거지만, 연애의 성공은 결혼이 아니다.

연애의 실패가 결혼이다.

멈출 수 없는, 끝나지 않는 실패의 여정.

그것이 결혼.


서로 아련하게 마음아프게 이루어지지 않아 그리운 것이 연애의 성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남자 친구를 잃고 남편을 맞았고 8년째 실패중인 연애를 견디고 있다.




 신혼여행은 샤랄라 드레스를 입고 블링블링한 곳에서 공주공주한 사진을 찍는 거라고 생각해서 정한 곳이 팔라우였다. 당시 남자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여름 휴가로 가능한 기간이 3일이라 주말을 합쳐 5일을 쉬는 것이 최대라고 했다. 하지만 결혼할 때는 일주일 휴가가 가능하니 여름휴가로도 갈 수 있는 곳 말고 더 멀리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정한 곳이 뉴욕. 뉴욕, 맨해튼. 그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는.

남편이 된 남자는 낮밤으로 힘들었다. 나의 체력과 성격에 맞춰주느라고.


 남편은 전직 해외영업맨.

해외출장을 다니며 모은 항공사 마일리지가 부족했던 신혼기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가족마일리지로 합쳐 후에 후쿠오카와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었다. 특히 제주도는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숨가쁘고 허리아팠던 임신시절에 큰 위로가 되었고 덕분에 비지니스석 허세샷도 찍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달콤할 줄 알았지만 퍽퍽했던 신혼생활에 여행을 끼워넣어 잠시나마 판타지를 누릴 수 있었다. 판타지를 누리고 오면 다시 퍽퍽해지긴 했지만 솟아날 구멍이 솟아날 방법이 있었다!


 남편은 평생 다닐 줄 알았던 휴가 3일주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여러 번의 이직을 거치며 원하는 근무스타일과 연봉수준을 맞추었다. 결과가 '맞추었다'여서 망정이지 결혼 후 3년 동안 3~4번의 이직을 거듭하는 통에 나는 마음이 보통 심난한 것이 아니었다. 심난했던 시절을 지나 여러가지 조건이 맞춰진 직장에 근속하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남편에게 중요한건 연봉이었겠지만 나에게 중요한건 휴가쓰기가 얼마나 유연한가였다.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더 커졌다.이제 비수기에 여행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와 남편의 여행은

샤랄라와 배낭여행 사이

게스트하우스와 특급호텔의 공존

허세와 실속의 균형

그리고 예쁘게 나온 사진사진사진사진사진!


이 모든 과정에는 '돈은 안쓰는 것이다'라는

남자의 인생모토가 깔려있다



+ 남자, 여행의 이유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관광경영학과에 들어 갔다. 미지의 장소에 가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아무거나 잘 먹고 누구와도 잘 지낸다.


운명처럼 여행을 좋아한다는 여자를 만났다. 근데 여행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여자다. 심히 당혹스럽고 난감하다. 여행인지 극기훈련인지 모르겠다.


여행의 이유?

여자가 가자고 하니까.


 남편은 원래 생각이 많은 편이 아니다.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생각하는 건 좀 귀찮다. 그냥 하자면 하고 말자면 만다. 군복무하며 깨달았다. 생각하지 않는게 제일 편한거라고.

머리 대신 몸을 쓰는게 편하다.

여자와의 관계에서는 특히 더. (여자'들' 아님)






이전 02화 1. 여자, 여행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