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구체적인 계산이나 계획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우리 둘의 월급과 빚, 숨만 쉬어도 지출되는 돈의 위력을 진작 알았다면 아이는 하나,도 아니고 그냥 딩크로 살았겠지 싶다.
어쨌든 낳아놓은 아이들이고 우리에게는 엄청 특별하지만 남들에겐보편적인 느낌의 4인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더욱더 가성비를 따진 여행을 추구하게 되었다. 아니,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다. 넷이 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큰 일이다 보니 어디로 가든 하루 이틀 가진 않았다. 5~7일 정도로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았다.
해외는 더 그렇고 제주도 같은 경우도 저렴하게 티켓을 사도 1인당 왕복 8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자체가 돈이다. 여한이 없게 여유 있는 일정을 잡는 게 좋은 것 같다.
하루의 일정은 꼭 가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 하나만! 혹시나 해서 플랜 B를 세워 놓기도 하지만 있는 줄도 몰랐던 플랜 Z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일정 중 꼭 가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 2가지, 꼭 먹고 싶은 것 2가지 정도를 정해서 움직였다. 나는 움직였고 아이들은 움직여 드렸다.
애가 둘이니 기본 룸을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호텔급을 낮추고 룸 등급을 올려야 하니 특급인 듯 특급 아닌 특급 같은 호텔들을 찾아야 한다. 덕분에 검색력은 더욱 상승했다.
제주도 같은 경우는 앞 3-4일은 아이 동반이 가능한 게스트하우스나 더블베드가 두 개인 비즈니스급 호텔을 이용하고 뒤에 1-2일을 특급호텔이나 리조트를 이용하는 편이다.
임신했을 때부터 첫째가 5살, 둘째가 3살일 때까지 거의 매년 쉼 게스트하우스에 갔었다. 침구를 더 주셔서 아이들과 묵기에 괜찮았고 개별욕실에 세탁도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호텔 중에서는 지금은 더 쇼어 호텔로 이름이 바뀐 하얏트 리젠시 호텔이 특급호텔인 것 치고는 가격이 덤벼볼 만 했고 객실도 넓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기억이다. 5층에 있는 객실을 이용했었는데 5층에 아이 동반 투숙객들이 많았는지 거의 모든 객실 앞에 유모차가 파킹 되어 있어서 나도 유모차 밀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여행에 대한 아이들의 필요는 무엇인가.
딱히 없지 않을까.
고만고만할 때는 이유를 모르고 들려서 온 거니까.
그냥 흙과 물이 있으면 되고, 진상을 즉각 차단할 수 있는 젤리 등의 달달 구리가 있으면 된다. 그런 것 같다.
팔도 진수성찬이 차려져도 아이들이 원하는 건 우동과 만두와 김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이와 여행 참 쉬워 보이는데 여행 내내 아이님들의 컨디션과 리액션을 살펴야 하는 것 자체가 따분한 일이다. 노는데 열중해 있는 아이들을 잠시 남편에게 맡기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좀 사다 마시고 싶었는데, 온몸이 센서이자 레이더인 아이들은 나의 거동하나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집 떠나면 개고생인데 왜 굳이 나가려고 하나.
집 안 떠나도 개고생이기 때문이다.집은 여자에게 상처의 공간이고 노동의 공간이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또 출근이 시작되는데 퇴근이 없는 공간과 업무. 인간의 기본권을 위해 자고 일어나면 다시 출근이 시작되고 퇴근하지 못하고 또 출근해야 하는 여자의 일. (남편이 도와주는 편이어도 내 눈에만 보이는 집안을 위한 일들이 늘 있다)
해야 할 일이 끝없이 보이고 집안일하다 어디에 부딪치면 몸이 아프고, 잘해보려고 노력하는데도 바람 잘날 없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과한 에너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가 정신도 아프고, 아이들이 기어 다니는 것만 봐도 눈알이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아 어지러워.
어차피 할 개고생이라면 집안일이 없는 곳에서 인간답게 먹고 문 닫고 용변을 보고 판타지처럼 화장을 하고 세상 행복한 아이 엄마인 것처럼 사진찍히고 싶다.
그리고 내 눈과 머리에 우리 집 베란다 샷시를 통해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 멋있는 풍경을 입력하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