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정 Jul 11. 2020

1. 여자, 여행의 이유

집떠나면 개고생이라는데 나는 개고생러

 이 여자인 나는 원래 집 떠나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좋아한다. 서른 전에 해야 할 일은 유럽 혹은 남미 등으로의 장기여행 혹은 명품가방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여행으로 인생을 펼치고 가방에 인생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에 남는 것은 여행사진 아니면 가방뿐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하루라도 젊을 때 멋진 여행지에서 건강하고 그나마 예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인생의 과업이다. 가방도 사실 중요하다. 남편은 변해도 가방은 안 변한다.


 나는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편이고 적응력은 애니멀 수준.

인도 델리에 갈 때 에어인디아의 기내식을 다 먹었더니 한국인 스튜어디스가 여자에게

"제가 본 기내식 다 드신 유일한 여성분이세요"

라고 했다.


그렇다고 배낭여행 스타일의 여행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허세 스멜을 좋아하기 때문.

배낭여행 수준으로 돈을 쓰고, 도미토리 가격 수준의 호텔을 찾아내는 검색녀.

내가 “검색 좀 해봤어.”라고 말하는 걸 내 남편인 남자가 제일 싫어한다.



 여행은 현실 속 판타지.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고 하지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았다가는 일정한 벌이를 하기 힘들 것이고, 여행을 일상처럼 했다가는 지지리 궁상인 형편이 될지도 모른다.


여행이 일상 속의 판타지이긴 하지만 내가 불러들인 판타지이므로 판타지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판타지 역시 내 현실의 일부이다.

판타지는 잠시이고 생활은 그보다 길게, 훨씬 길게 이어진다.


일정한 벌이(아니면 가끔 대박적 벌이라도)를 하지 못하면 여행은커녕 인간답게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지속적인 여행을 위해서는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두 아이를 키우기도 하지만 몇 시간은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받은 월급으로 나름의 비자금을 형성한다.


폭넓진 못해도 좁고 깊은 비자금을.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이전 01화 프롤로그, 내 여행의 역사와 경비의 수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