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두 글을 많이들 읽어 주셨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저도 이 과정의 기억을 남겨두고 싶어서 그때의 기분과 생각을 떠올리며 몇 개 더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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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에 걸친 인테리어공사를 마무리하고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하여 입주를 했다. 책상, 식탁, 텔레비전, 피아노 같은 거대한 가구들이 없음에도 불구, 아담한 투룸집에서 쏟아져 나온 이삿집들은 실로 대단했다. 집이 넓어졌으니 이리저리 헤쳐모여 하면 적당히 정리될 줄 알았는데 짐의 속성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구의 집이든 다 그렇겠지만 우리 집 짐의 태반이 책이었다. 반나절 정도 오로지 책장앞에만 머무르며 책장을 정리했더니 다음 날 허리가...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너무 아팠다. 책장정리 몇 시간 했다고 허리가 부서지듯 아프다니. 이것이 사십인가.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다름아닌, 그렇게 원했던 나의 화장실. 안방에 붙어있는 안방화장실이었는데 타일고르러 갔을 때 보통 작은 화장실은 이렇게들 한다며 심플한 무채색의 타일을 추천해주셨다. 흐음. 나는 추천해준 그 타일은 큰 화장실에 하기로 하고 안방화장실, 나만이 쓸 나의 화장실은 비앙코스타일로 하기로 했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오면서 안방화장실에 이리 힘주는 경우는 처음봤다며, 본인도 기대되신다며 완성되면 사진찍어가겠다고 하셨다. 저런 타일에는 금색이 잘 어울려서 수전도 금색으로 하려다가 참았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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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업로드된 이 영상
을 보니 내가 집 사던 때도 떠올라 뭉클했다.
우리는, 사실은 내가, 살고자 하는 곳이 명확했다.
"00구 00동 00아파트"
이렇게.
맞벌이는 유지할 생각이고 맞벌이를 위해서는 친정엄마의 도움이 꼭 필요했기에 차선이 없었다. 그 아파트를 사기 위해 우리의 경제력을 갖추는 수 밖에.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목표로 하는 아파트의 매물은
5개도 보지 않고 결정했는데, 내가 성격이 급한 탓도 있었지만 관심단지였기 때문에 층수와 인테리어의 컨디션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덤벼서 몇 개 안보고도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를 들어, 5억짜리 집을 산다고 딱 5억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려고 하는 집 매매가의 10%정도의 돈은 여유있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복비와 법무사비용, 취득세, 인테리어비용 등이 추가로 든다. 법무사비용은 그렇게 많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몇 만원이라고 해도 예상치 못한 지출은 당황스럽다. 첫 주택인 경우 취득세가 1.1%라서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5억 집의 1.1%면 5백만원입니다. 적지 않아요. 숨막...
우리는 처음부터 텔레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혼할 때는 돈이 없었고, 지금도 텔레비전 살 돈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아빠가 빌린 집(숙소)에 텔레비전 있어?"
라고 묻는 게 일반이었는데 내가 화장실 두 개인 집에 대한 압박(?)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여행간다고 하면
"거기 집에 화장실 두 개야?"
라고 묻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아이들에게 얘기했을 때도
"거기 화장실 몇 개야?"
첫마디였다.
팬데믹 첫 해 동안 집값이 급하게 올랐다. 우리가 집을 샀던 그 시점에 집을 사지 않았다면... 그런 상상은 정말 불가능하다.
2억 넘게 대출을 받았고 매달 96만원정도가 원천징수되고 있다. 근로노동을 계속해야하는 이유다. 결혼한 이래로 가장 큰 규모의 자산을 형성했는데 빚도 역대급이다. 원래 이런건가?
아이 둘은 아직 초저학년이라서 갈 길이 멀다. 돈 들 날이 쌓였다는 얘기다. 사교육은 안시킨다고 해도 먹이긴 해야되잖아. 우리 애들은 하루에 우유를 1리터씩 마셔치운다. 우유팩이 겁나 많다. 동네 복지관에서 1리터우유팩 15개당 두루마리휴지 1롤씩을 주는데, 그동안 솔찬히 받아왔다. 그래도 아이들이 마시는 우유와 우리가 쓰는 휴지값은 한 달이면 실로 목돈이다.
돈 들 일은 많은데 돈 벌 날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니 우리가 기댈 곳은 홀로 우뚝 서 있는 이 집이다. 고대하던 화장실 두 개인 집으로 입성했으니 사는 동안 정말 여한없이, 이 집이 무너지지 않는 한, 죽을 때 까지 살아야지.
그런데 막상 들어와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라. 마음이 변한다. 마음이 변했다.
그만했던 집이 이만한 돈을 벌게 해주었으니 이만한 집은 저만한 돈을 벌게 해주지 않을까.
우리가 작정해서 모은 돈은
신혼 전세집 보증금이었던 1억과
투룸아파트에 살면서 3년간 모은 1억.
그렇게 총 2억인 것 같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위해 텄던 마이너스통장은 금리가 높기 때문에 빨리 갚았는데, 인테리어 공사하기 위해 썼던 돈이었으니 3200만원이라고 계산하면 우리는 2억3천2백만원으로 배가 넘는 집을 살 수 있었고, 이 집은 호시절을 만나 지난 3년간은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정해야한다.
지금까지 평수를 넓히며 이사하는데 도움을 준 1등공신은.... 절약왕 남편이고 알뜰한 나지만, 여기에 엑셀을 밟게 해준 것은 홀로 우뚝서서 제값을 올려 온 집 자체.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은 돈 들 날들. 사는데는 돈이 든다.
40대초반 부부로 우리가 일할 수 있는 날은, 맘 같아선 50년도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받고 부업으로 용돈을 벌 수 있는 스테미너가 남아있는 날은 사실 줄어들고 있다.
이젠 부업이 생계를 책임져줘야 하고 월급이 이자를 책임질 수 있도록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
정규직이지만 언제 짤릴지, 언제 망할지 모르는, 남편이 다니는 작은 회사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발매트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은걸까.
그래서 코스피3200이던 작년,
호기롭게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시리도록 파랗게 멍든 계좌는 정말 이 집 아니었으면 패가망신각. 어떡하지.
어느 토요일,
남편에게 일이있던 날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를 만나 함께 대형키즈카페에 놀러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내 기억에, 겨울이긴 했지만 햇살이 좋아 운전할 맛이 나던 날이었다. 날씨 좋다~ 며 수다를 떨다가 그 친구가 말했다.
"너 덕정이라고 알아?"
"덕정이? 몰라?"
"아니ㅋㅋㅋ 덕정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의정부 지나서? 거기 10년전에도 1억인데 지금도 1억인 아파트가 있데."
"그래? 첨들어봐. 1억? 몇 평이?"
"30평? 어제 무슨 유튜브에서 본건데. 거기 무슨 gtx들어온다면서... 이따 보내줄게."
"오키"
하고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대화로 이어졌고 남편들 없이 아이들과 하루를 신나고 힘들게 무사히 잘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고 재웠다.